그의 마지막 경고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공기를 나누던 사람이 나를 배신했다는 그 현실이.
몸이 떨렸다. 이게 화인지 공포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단 하나, 아내가 웃으며 "오해야"라고 말하던 그 목소리만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라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수백 번 터졌다.
도대체 왜. 무엇이 부족했는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아이들과 집, 주말마다의 마트, 여행지에서의 사진들.
그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뒤엉켜 더럽혀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깨졌을 때, 나는 내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녀가 나를 지운 것처럼, 나도 나를 잃었다.
그녀와 그 남자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그 남자의 이름이 찍힌 메시지, 통화 기록,
아이 몰래 나갔던 밤들,
모두 명백한 증거였다.
그녀가 말했다.
"그냥 말벗이었어."
나는 묻고 싶었다.
말벗이 모텔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게 정상이냐고.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들을 답이 뻔했으니까.
이미 그녀는 내 앞에서 진실을 말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분노가 밀려왔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
그 충동을 억누르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고,
문을 걸어 잠근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울었다.
말도 안 되는 슬픔이 아닌,
가슴을 찢는 고통.
사람이 우는 게 아니라
몸 전체가 오열하는 느낌.
그날, 나는 나를 무덤에 묻었다.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는 안 그럴 거라고.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용서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눈물도 거짓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눈물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일 뿐이었다.
한때 사랑했던 얼굴인데,
지금은 낯설고 무서웠다.
그녀가 옆에 앉아 있어도
나는 혼자였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을 의심하는 법을 배웠다.
이전에는 ‘사람은 본래 선하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사람은 누구든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무섭다.
그녀는 내 안의 신뢰라는 단어를 죽였다.
영영 되살릴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기록을 시작했다.
그녀의 외도 이후의 모든 행동,
그 남자의 이름이 언급된 상황,
작은 흔적도 빠짐없이 메모하고 저장했다.
이건 미련이 아니었다.
싸움이었다.
가정을 위협한 자들에 대한 증거 수집.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변호사를 찾았다.
소송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기로.
감정도, 기억도, 미련도
모두 정리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나는 다시는 그 강을 보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가끔 둘째가 엄마를 찾을 때면,
내 안의 무언가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제는 울지 않는다.
울면 내가 진다.
아이들에게 내가 울고 있다는 걸 들키면
그들도 무너질 거다.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아빠로서, 보호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제 그녀가 다시 연락을 해도
심장이 뛰지 않는다.
분노도, 슬픔도 사라졌다.
그녀는 이미 내 인생의 관 속에 들어간 존재일 뿐이다.
더 이상 살아 있는 감정으로 꺼내지 않겠다.
나는 그렇게 나를 지킨다.
어쩌면 이 고통이
언젠가 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오늘 하루를 무너뜨리지 않고 견디는 데 집중할 뿐이다.
다시는, 어떤 관계에서도
나 자신을 버리지 않기로 다짐하며
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