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거짓 사과, 그리고 역겨운 후회

한해동안 2025. 4. 4. 16:35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그녀가,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는 사실.

그 문장들을 읽는 내 손은 떨렸고, 머릿속은 쿵 내려앉았다.

그 남자는 상간남이었다. 내 아내의 시간과 감정을 훔쳐간 사람.

그리고 나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날 네가 있어서 행복했어."

"다음에 또 보자. 그날처럼만…"

그런 문장들이 스크린 위에 나열되어 있었다.

그녀의 말투, 그녀의 이모티콘, 내가 알던 그녀 그대로였다.

단지 그 대상이 나 아닌 다른 남자였을 뿐이다.

처음 며칠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밥도 먹지 못했고, 잠도 들 수 없었다.

아이 얼굴을 보며 간신히 숨을 쉬었다.

그녀와 마주칠 때면, 그 얼굴이 이질적이었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얼굴인데, 이젠 낯설고 서늘하기만 했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정말 미안해… 한 번만, 한 번만 봐줘."

"다시는 안 그럴게. 그 사람한텐 마음 없었어."

하지만 그 말들이 가슴에 박히지 않았다.

진심은, 늦으면 그냥 변명이다.

그녀가 눈물로 애원할수록, 나는 더 멀어졌다.

그녀는 매일 사과했다.

"잘못했어."

"정말 반성하고 있어."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아."

그 모든 말이 역겨웠다.

그녀의 울음도, 흐느낌도, 내 귀엔 징징거림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웃겼던 건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말.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마치 거대한 결심이라도 한 듯 말하는 모습에,

나는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녀는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도 깼고, 집 안은 그녀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그 소리가 고막을 찌르듯 아프게 다가왔지만,

그 안엔 사과보다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이 사람은 지금 나를 잃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자신이 혼자 남게 되는 게 두려운 거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처음엔 그녀가 날 사랑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붙잡는 건 ‘나’가 아니라

‘지금의 안정된 삶’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처음엔 당당했다.

"그래, 이혼해.

당신이 뭐 얼마나 잘났다고 그래."

그렇게 싸늘하게 말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울고불고 매달리는 이유는 뻔했다.

그 남자가 그녀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떠나려 했고,

그 남자에게 기대려 했지만

결국 그 남자에게도 거절당한 것이다.

“당신이 없으면 못 살겠어.”

그 말의 이면은

“그 남자도 나를 안 받아줬으니, 당신이라도 붙잡아야겠다”는 것.

나는 그게 너무나 분명하게 보였다.

“네가 있으면, 집에 안 들어가고 싶다.”

그녀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너무도 충격을 받았다.

한때는 내가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은, 그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의 발로였다는 것을.

며칠이 지나고,

그녀는 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진심으로 후회해."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후회? 네가 후회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널 만난 걸 후회해.”

그녀는 조용해졌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내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는 걸 확인했다.

사랑은 끝났고, 연민도 남지 않았다.

나는 이제,

법적으로, 정서적으로,

내 삶에서 그녀를 지우는 중이다.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다시 나로 설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요즘은 하루에 한 번 거울을 본다.

초췌한 내 얼굴.

하지만 나는 속삭인다.

“잘하고 있어. 흔들리지 마. 이건 너의 회복이야.”

그리고 오늘 밤,

나는 다시 다짐한다.

“이번만큼은,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

그녀의 흔들림에 내가 또 속아서는 안 된다.

그녀의 눈물에 내가 또 무너져선 안 된다.

나는 아버지고,

나는 인간이고,

나는 나의 미래를 지킬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는,

내가 내 감정을 지킬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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