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의심과 망설임, 그리고 마지막 기회

한해동안 2025. 4. 4. 16:36

처음에는 단지 감정의 파동이겠거니 했다.

결혼 10년 차, 어쩌면 익숙함이 만들어낸 무뎌진 거리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계속해서 불편하게 일렁였다.

작은 것 하나에도 눈이 가고,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아내의 말투, 표정, 웃음소리조차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

정말 달라진 건 그녀였을까, 아니면 나였을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녀는 여전히 평소처럼 행동했다.

아이를 챙기고,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가끔은 함께 TV도 봤다.

하지만 그 모든 평범한 장면들이 전부 연기처럼 느껴졌다.

진짜 그녀는 그 안에 없었다.

겉모습만 남겨둔 채, 어딘가 다른 곳에 마음이 가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예감은, 더 이상 단순한 예감으로 남지 않았다.

전화가 오면 항상 자리를 피했다.

거실에 있던 그녀가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안방이나 베란다로 가는 장면을 몇 번이고 목격했다.

한 번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순간적으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봤다.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이 너무 어색했다.

그 웃음은, 무언가 감추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외출도 잦아졌다.

“친구를 만난다”는 말이 늘었고,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물론 내가 외출하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점점 흐려졌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 단정하게 꾸미고 나갔다.

머리카락을 정성껏 말리고,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고, 향수까지 바르고 나가는 모습을

나는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봤다.

“설마”라는 마음과 “확실하다”는 직감 사이에서 수없이 오갔다.

핸드폰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그 안에 내가 모르는 그녀가 있을까봐.

그 안에, 다른 남자의 이름이 있을까봐.

그게 상간남이라면, 나는 무너질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녀가 샤워 중일 때 진동이 울렸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익명의 이름, 그리고 “잘 들어갔어?”라는 메시지.

대화창을 열자 수많은 말풍선들이 나를 덮쳤다.

“오늘도 보고 싶어.”

“다음엔 우리 숙소에서 하루 더 있을까?”

“당신 없으면 안 돼.”

손이 떨렸다.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발이 휘청거렸다.

나는 거기서 모든 것을 봤다.

두 사람의 은밀한 약속, 추억, 장거리 만남, 짧은 휴식과 도피 같은 주말들.

그녀는 그 남자에게 매일매일 자신을 내어주고 있었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날 밤, 평소처럼 식사를 준비하는 그녀를 보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반복된 질문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왜였을까.”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 현실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며칠간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관찰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

내가 사랑했던 그녀,

내 아이의 엄마이자 나의 반려자였던 그 사람이

지금 이 집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철저하게 외로웠다.

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 나왔을 때,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 남자는 누구야.”

그녀는 당황했다.

그리고 곧 고개를 숙였다.

처음엔 부정했고,

이내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실수였어.”

“잠깐 흔들렸던 거야.”

“그만두려고 했는데, 끝내는 게 쉽지 않았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눈물에 아무런 위로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우는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들켰기 때문에 우는 것이고,

모든 걸 잃을까봐 두려워서 우는 것이다.

상간남에 대해 묻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름을 말했다.

어디서 만났는지, 어떻게 시작됐는지,

내가 알지 못했던 그녀의 시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시간들은, 나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더 진하고, 더 생생했다.

그녀는 그와 연인처럼 지냈고,

그와 함께했던 기억들을 떠올릴 때

오히려 말투가 더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너졌다.

하지만 끝까지 듣고 싶었다.

상대가 어떤 인간인지,

그녀가 그를 위해 나를 얼마나 가볍게 버렸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녀와 이 결혼을 유지할지,

아니면 모두를 놓을지.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다.

증거를 모으고,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그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약하지 않다.

그리고 더 이상 무력하지도 않다.

진실을 마주한 지금,

나는 그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내 감정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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