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황, 다른 태도
그녀의 외도를 알게 된 날, 나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아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온몸에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정말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상대가,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눴던 바로 그 남자였다는 것이.
“설마, 그럴 리 없어. 아니겠지. 오해일 거야.”
그렇게 수십 번도 더 부정했지만, 결국 진실은 잔인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둘이 주고받은 메시지, 그 남자의 집 앞에서 찍힌 차량 블랙박스, 내가 출장 간 사이 그녀가 사라졌던 시간들… 조각조각 이어붙이면 하나의 확정된 문장이 완성되었다.
“그녀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처음엔 분노보다 수치심이 더 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돌아보게 됐다. 혹시 내가 너무 무뚝뚝했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말 걸지 않았던 밤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그 어떤 것도 그녀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이건 ‘사정이 있었다’는 말로 덮을 수 없는 배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처가에 먼저 이야기했다.
“이건 단순한 다툼이 아닙니다. 명백한 외도고, 증거도 충분합니다.”
나는 그들이 최소한 중립적인 입장에서라도 조언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건 외도라고 볼 수 없어. 그냥 감정이 흔들렸던 거지.”
“당신이 너무 빡빡하게 굴었던 건 아니야?”
“그 남자랑 잠자리를 한 것도 아니잖아.”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럼 내가 그 남자와 했던 대화를 그대로 따라 해줘요. 그때도 외도 아니라고 하실 건가요?”
하지만 그들은 침묵했고, 눈을 피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 사람들은 딸이니까 감싸는 거구나. 같은 잘못도, 가족이면 실수가 되고, 남이면 죄가 되는구나.”
그들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20년 전, 장인의 큰딸, 그녀의 윗동서가 외도를 저질렀을 때.
“가족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용서할 수 없다.”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지.”
그 말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 마음이 그런 걸 어떻게 막아.”
“당신도 좀 더 아내를 챙겼어야지.”
“이걸로 가정이 깨지는 건 너무 안타깝지 않아?”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운전대를 잡고 몇 번이나 속으로 외쳤다.
“나는 잘못한 게 없어. 나에게 죄는 없어.”
그녀는 여전히 침묵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피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게 더 끔찍했다.
차라리 울부짖거나 무릎이라도 꿇었더라면, 내 마음은 덜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말로 싸우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증거를 정리했고, 변호사를 찾았다.
“소송 진행하시겠습니까?”
“네. 더 이상 감정으로는 못 버팁니다.”
주변 사람 몇몇은 내게 조언했다.
“애들도 있고, 지금은 참고 넘어가세요.”
“시간이 지나면 그녀도 후회할 거예요.”
그 조언들이 내 귀에 어떻게 들렸는지 아는가.
“지금은 조용히 당하고 있으라는 말이구나.”
“당신이 받는 고통은 잠시 접어두라는 말이구나.”
아니, 나는 더 이상 그런 조언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그 누구도 내 감정에 대해, 내 고통에 대해 대신 판단할 수 없으니까.
그들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나는 그들에게 실망할 이유조차 느끼지 않았다.
“정의는 상황이 아니라, 대상에 따라 바뀐다.”
나는 그걸 몸으로 배웠다.
정의는 공정하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흔적을 따라 끝까지 간다.
그녀가 날 떠났든, 가족이 등을 돌렸든,
내가 나를 지켜야 했다.
지금은 감정도 많이 사라졌다.
분노는 냉기로 바뀌었고, 슬픔은 무감각으로 변했다.
그녀는 여전히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괜찮다.
그 말은 이제 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을 테니까.
아이들을 보며 다짐했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진실된 사람이 될 거야.”
“적어도 내 아이들은, 언젠가 아빠가 왜 싸웠는지 알게 될 거야.”
나는 더 이상 소리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그게 나의 정의고, 나의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