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아내가 떠났다.

한해동안 2025. 4. 26. 06:11

문을 열고 나간 건 그녀였지만,

비어버린 집 안엔 내 숨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가방도, 향수도, 아이의 사진도 사라졌는데

가장 이상한 건,

그날 이후로 내 목소리조차도 조용해졌다는 거다.

주변에는 이렇게 말했다.

“별거 중이에요. 요즘 아내가 많이 힘들어서…”

그렇게 말하며 나 자신도 점점 그 문장을 믿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별거가 아니라,

배신과 방치의 결과였고,

그녀가 이 집을, 이 가정을 의도적으로 떠난 선택이었다는 걸.

그녀는 외도를 했다.

정확히는, 내가 모르는 시간에 다른 남자와 감정을 나눴다.

그 상간남이 누구인지, 언제부터였는지, 왜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녀는 이미 나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얘기 좀 하자. 법적으로 정리하자.”

나는 문자창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손끝이 시렸다.

이건 감정이 아닌 계산의 순간이다.

그녀는 따뜻함을 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유리한 시간’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제 내가 흔들릴 차례가 아니라는 것을.

이 싸움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그녀는 이미 수많은 플랜을 짜놓았다는 걸 말이다.

첫 번째는 나를 악마로 만드는 전략이었다.

주변에선 벌써 소문이 돌고 있었다.

“남편이 무섭대.”

“말투가 너무 강하고, 감정 표현이 없었다더라.”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외도는 감추고,

내 성격과 말투, 기질을 이용해 ‘억압당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감정적 폭발을 유도하는 패턴이었다.

문자 하나하나에 날카로움이 묻어 있었다.

“아이 양육 같은 건 생각 안 해봤어?”

“집에 왜 그렇게 안 치워놨어?”

자극적이고 일방적인 말들.

나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그녀가 원하던 ‘폭력적 남편’의 프레임 안에 갇힌다는 걸 알았다.

나는 조용히 준비하기로 했다.

‘입을 닫고, 손을 멈춘다.’

그 다짐 이후로 나는 철저히 움직였다.

모든 대화는 문자로.

모든 통화는 녹음으로.

나의 하루는 감정을 누르고,

나를 지키기 위한 ‘법적 생존의 기록’이 되었다.

그녀는 다시 연락해왔다.

“왜 이렇게 싸늘하게 구는 거야?”

나는 잠시 멈췄다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감정보다, 진실이 중요하니까.”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마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주변을 포장하고, 나를 프레임에 가둬

‘피해자’로 살아남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진짜 피해자는 누구였는지.

누가 아이와 함께 아침밥을 차리고,

누가 침묵 속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기다렸는지.

나는 지금 감정을 덮고 있다.

화가 나지 않는 게 아니다.

분노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정확해지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더 이상 없다.

내가 지키고자 했던 가정도 이미 뒤틀렸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그녀의 흔들림에 감정으로 대답하지 않기로.

오직 사실과 기록으로만 대응하기로.

나는 여전히 이 집에 있다.

여전히 아이를 기다리고,

혼자 식탁을 마주하지만

이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들어섰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남겨졌지만

결국 남겨진 이가 진실을 지킬 수 있다는 걸

나는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싸움이 끝났을 때,

나는 말할 것이다.

“나는 끝까지 나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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