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이제는 내 삶을 찾을 차례

한해동안 2025. 3. 26. 18:18

나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하늘은 맑았고, 거리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과 달리 나는 너무 오랜 시간 멈춰 있었다.

그녀가 바람을 피운 걸 알게 된 건 작년 여름이었다.

습하고 무거웠던 그 계절만큼이나,

그날 이후 내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증거는 분명했다.

휴대폰 속 은밀한 사진,

퇴근 전에 들른 모텔 주소,

사라진 통화 기록.

그녀는 내 아내였고,

그 남자는 그녀와 함께 나를 배신한 상간남이었다.

나는 처음엔 믿고 싶었다.

그녀의 눈물도, 떨리는 음성도,

그 모든 게 진심이길 바랐다.

하지만 반복되는 거짓말과

감정 없는 사과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용서보다 무의미한 것이 없다는 걸.

거실에서 아내가 나를 살폈다.

그녀의 표정 하나에 마음이 출렁이던 내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거 없어.”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상관없었다.

더 이상 나는 그녀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생각하게 됐다.

이제 언제든 내가 이혼을 말하면 끝이라는 것.

내가 원한다면, 나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쉬워졌다.

나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에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다.

무심해진 내가 생소하면서도 편했다.

그 편안함은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지만,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껍질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무관심 속에서 달라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아내였다.

“요즘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되물었다.

“왜, 네가 불안해?”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너는 내가 항상 쩔쩔매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

근데 이제는, 네가 쩔쩔매야 할 차례야.”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묻는다.

“…나를 떠날 거야?”

나는 웃었다.

“내가 왜 미리 말해줘야 해?

이제는 네가 불안해하며 살아야 해.”

그녀는 드디어 깨달은 듯했다.

이제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는 걸.

며칠 뒤, 그녀가 물었다.

“오늘은 어디 가? 내가 데려다줄까?”

“필요 없어.”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여전히 무언가를 회복하려 노력했지만,

나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았다.

나는 내 삶을 찾기 시작했다.

헬스장에 등록하고,

미뤘던 취미를 다시 시작하고,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만들었다.

그녀가 물었다.

“어디 가?”

“내가 왜 네게 보고해야 해?”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상관없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선택하는 시기다.

이혼을 할지 말지,

그녀를 용서할지 말지,

어떻게 살아갈지도

모두 내 몫이었다.

그날 밤, 그녀가 말했다.

“정말… 나를 떠날까 봐 무서워.”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너는 내가 떠날까 봐 무섭겠지만,

나는 너와 계속 사는 게 더 무서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는 오직 나를 위해 선택할 거야.

내가 행복해지는 게,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응답이야.”

창밖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따뜻했다.

나는 미소 지었다.

이제야, 진짜 내 삶을 찾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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