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정이든 응원할게요.
어느 날 아침, 거울 앞에 섰다.
면도를 하려다 문득, 내 얼굴이 낯설었다.
피곤해서일까, 나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일까.
확실한 건, 예전엔 저 눈빛 속에 웃음이 있었다는 거다.
지금은 뭐랄까.
싸우다 지쳐서 겨우 선 사람 같은 눈.
그래도 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그녀의 외도를 처음 알았을 땐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되짚었다.
회사일에 치여서,
아이가 어려서,
혹은 내가 예전보다 무심해졌나.
나는 내 죄를 찾느라 바빴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한테 벌어진 일인데,
내가 가해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미안하다고 했다.
몇 번쯤은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눈물은 마치 연기 같았다.
죄책감의 눈물이 아니라
들킨 사람의 눈물처럼.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 사람을 사랑했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정리하고, 도장을 찍고,
모든 걸 마무리한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그 질문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정말 나라는 사람은
그녀의 어떤 부분도 채워주지 못했던 걸까.
내가 그렇게 하찮은 존재였나.
사람은 너무 당당하게 등을 돌리고 나가면
남겨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자꾸만 작아진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
예전에, 정말 많이 웃던 날.
퇴근길에 꽃을 사서 들어갔고,
그녀가 “무슨 날이야?”라고 물으면
“그냥 보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던 그날.
그날 밤, 둘이 웃으며 사진도 찍었었지.
그 사진은 어디 갔을까.
그 기억을 다시 꺼내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좀 따뜻해졌다.
아프지 않았다.
그땐 분명히 진심이었다는 걸,
내가 누군가를 위해 진심을 다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주는 장면 같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상처받은 건 맞지만,
내가 누구보다 잘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거.
다 주고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내 몫의 사랑을 다했단 거.
그건 내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라는 거.
주변에서 말했다.
“그래도 애 엄마니까 받아줘야 하지 않겠어?”
“사람은 변하니까, 한번쯤은 기회를…”
하지만 그들은 내 밤을 모른다.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들어간 날,
아이가 자는 걸 보며 울먹였던 내 새벽을 모르고
말은 쉽게 한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 이후에,
반성은커녕
책임을 회피하고,
심지어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습성이다.
그녀는 그런 쪽에 가까웠다.
처음엔 미안하다고 했지만,
곧 “너도 나를 외롭게 했잖아”라고 말했고
나중엔 “그 사람은 내 얘기를 들어줬어”라며
상간남을 감쌌다.
그걸 들으며 나는 확신했다.
우리는 이미 끝났다고.
그리고 내가 더는 이 관계를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그래서 떠나보냈다.
미련도, 기대도 없이.
단지 아이를 품에 안고,
내 삶을 다시 시작했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단단하게 버텨왔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녀는 내 인생에서 한 챕터였다.
슬펐고, 아팠지만,
그 챕터는 끝났다.
지금은 새 이야기를 쓰는 중이다.
아이와 함께
한 페이지씩 조심스럽게,
하지만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고.
그리고 언젠가는,
그 웃음 많던 날들처럼
훌훌 털고,
맘 편히,
활짝 웃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나는 그걸 안다.
왜냐면 나는 이미 한번 해봤던 사람이니까.
그 웃음을 다시 꿰매는 법을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정말 잘 살아내고 있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또 누군가가
이 길을 걸어오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결정이든 응원할게요.
당신은 정말 잘하고 있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