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럴 리 없다고,
우리 가정이 그럴 리 없다고,
내가, 이런 상황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아주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당신, 요즘 너무 예민한 거 알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예민했던 건 내가 아니라,
그녀의 행동이었다.
늘 하던 걸 잊고,
눈을 피하고,
문자를 숨기고,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그 손끝이 자꾸만 떨렸다.
나는 그 모든 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외면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랬다.
사랑은 때로,
이성보다 무력하다.
결정적인 건, 한 통의 문자였다.
“다음 주엔 오빠가 데려가야 돼요. 저희 집엔 못 오게요.”
상간남.
내 아내와,
내 아이의 엄마와,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던 남자.
나는 한참을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잠든 척하고 있었고,
나는 옷장 안에서 서류를 꺼내고 있었다.
결혼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의료보험 기록.
이젠 사랑의 증거가 아닌,
법적 대응을 위한 기초자료가 되었다.
나는 곧장 변호사를 찾았다.
그는 조용히 내 얘기를 듣고 나서
상간소송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마세요.
증거가 있으면, 방법은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이제 감정이 아니라,
정확한 절차로 이 상황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여전히 아이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좋은 엄마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니었다.
“왜 그랬어?”
그 한마디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차마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외롭다고 했다.
내가 너무 무심했고,
우리 사이엔 대화가 없었고,
그 남자는 자신을 ‘여자로 대해줬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난 뭐였는데.”
증거는 충분했다.
위치 기록, 메시지 내역,
그리고 상간남의 차량 블랙박스에서 찍힌 호텔 앞 장면들.
심지어 그녀가 내 생일이었던 날
그와 함께 있었다는 증거까지 나왔다.
나는 내 생일에 혼자 아이랑 케이크를 먹었다.
그녀는 ‘출장’이라고 했고,
그날 나는 딸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지만,
지금 보니 눈이 참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그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다.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아프다 못해 마비되어버릴 것 같았다.
변호사와 함께 소장을 작성했다.
상간남에 대한 위자료 청구.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성적인 척을 하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고,
아이 앞에서는 웃어야 했고,
내 부모님 앞에서는 아무 일 없는 듯 굴어야 했다.
그래서 밤이 되면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의 묘비를.
소장이 접수되었다.
상간남은 놀랐는지
바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연락을 해왔다.
“미안합니다. 그럴 생각 아니었는데…”
이제 와서 그럴 생각 아니었다고?
그 말이 가장 나를 미치게 했다.
“그럴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몸을 섞지?”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더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는 내가 소송을 시작했다는 걸 알자,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울면서,
미안하다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차갑게 말했다.
“이건 기회를 묻는 게 아니야.
지금은 결과를 받아야 할 시간이야.”
그녀는 울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눈물조차 아깝다고 느껴질 만큼
나는 이미 다 소진돼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버텨야 할 건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내가 무너지면
아이도 무너진다.
내 인생도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매일 운동을 하고,
상담을 받고,
기록을 했다.
나를 회복하는 프로젝트.
그 어떤 사람보다 치열하게 나 자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그녀와 처음 손을 잡았던 날,
아이를 처음 안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
모든 순간이 거짓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억들을
‘과거’에 두기로 했다.
이제 나는 미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한때는 그녀의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다시 걷는 사람이다.
무너졌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그게 내 이야기였어.
하지만 지금 나는,
다시 나로 살아가고 있어.”
#외도소송
#상간소송
#배우자의배신
#법적대응
#자기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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