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한해동안 2025. 6. 29. 02:22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럴 리 없다고,

우리 가정이 그럴 리 없다고,

내가, 이런 상황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아주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당신, 요즘 너무 예민한 거 알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예민했던 건 내가 아니라,

그녀의 행동이었다.

늘 하던 걸 잊고,

눈을 피하고,

문자를 숨기고,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그 손끝이 자꾸만 떨렸다.

나는 그 모든 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외면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랬다.

사랑은 때로,

이성보다 무력하다.

결정적인 건, 한 통의 문자였다.

“다음 주엔 오빠가 데려가야 돼요. 저희 집엔 못 오게요.”

상간남.

내 아내와,

내 아이의 엄마와,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던 남자.

나는 한참을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잠든 척하고 있었고,

나는 옷장 안에서 서류를 꺼내고 있었다.

결혼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의료보험 기록.

이젠 사랑의 증거가 아닌,

법적 대응을 위한 기초자료가 되었다.

나는 곧장 변호사를 찾았다.

그는 조용히 내 얘기를 듣고 나서

상간소송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마세요.

증거가 있으면, 방법은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이제 감정이 아니라,

정확한 절차로 이 상황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여전히 아이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좋은 엄마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니었다.

“왜 그랬어?”

그 한마디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차마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외롭다고 했다.

내가 너무 무심했고,

우리 사이엔 대화가 없었고,

그 남자는 자신을 ‘여자로 대해줬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난 뭐였는데.”

증거는 충분했다.

위치 기록, 메시지 내역,

그리고 상간남의 차량 블랙박스에서 찍힌 호텔 앞 장면들.

심지어 그녀가 내 생일이었던 날

그와 함께 있었다는 증거까지 나왔다.

나는 내 생일에 혼자 아이랑 케이크를 먹었다.

그녀는 ‘출장’이라고 했고,

그날 나는 딸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지만,

지금 보니 눈이 참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그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다.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아프다 못해 마비되어버릴 것 같았다.

변호사와 함께 소장을 작성했다.

상간남에 대한 위자료 청구.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성적인 척을 하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고,

아이 앞에서는 웃어야 했고,

내 부모님 앞에서는 아무 일 없는 듯 굴어야 했다.

그래서 밤이 되면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의 묘비를.

소장이 접수되었다.

상간남은 놀랐는지

바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연락을 해왔다.

“미안합니다. 그럴 생각 아니었는데…”

이제 와서 그럴 생각 아니었다고?

그 말이 가장 나를 미치게 했다.

“그럴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몸을 섞지?”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더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는 내가 소송을 시작했다는 걸 알자,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울면서,

미안하다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차갑게 말했다.

“이건 기회를 묻는 게 아니야.

지금은 결과를 받아야 할 시간이야.”

그녀는 울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눈물조차 아깝다고 느껴질 만큼

나는 이미 다 소진돼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버텨야 할 건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내가 무너지면

아이도 무너진다.

내 인생도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매일 운동을 하고,

상담을 받고,

기록을 했다.

나를 회복하는 프로젝트.

그 어떤 사람보다 치열하게 나 자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그녀와 처음 손을 잡았던 날,

아이를 처음 안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

모든 순간이 거짓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억들을

‘과거’에 두기로 했다.

이제 나는 미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한때는 그녀의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다시 걷는 사람이다.

무너졌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그게 내 이야기였어.

하지만 지금 나는,

다시 나로 살아가고 있어.”

#외도소송

#상간소송

#배우자의배신

#법적대응

#자기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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