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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매일 달린다.

죽고 싶었다.​진심이었다. 그날 밤,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스스로를 위로할 말도 없었다.아내의 외도라는 단어를 내 입으로 꺼내는 순간, 내 모든 삶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으니까.​그녀가 나를 속였다는 사실.그걸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화도,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다.그저, 비어 있었다.무언가 내 안에서 빠져나간 자리에 거대한 구멍만 남아 있었다.​그래서 그냥, 뛰기 시작했다.​밤이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멈추지 않았다.울고 있었는지도 몰랐다.시야는 흐려졌고, 가로등 불빛이 사납게 번졌다.​“왜 나야…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아내에게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그녀의 ..

어디서부터 달라진걸까?

예전엔 안 그랬잖아.​이 말은 아내가 아닌, 내 입에서 나왔다.그녀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진작에 떠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여전히 생각난다.웃던 얼굴. 내게 밥을 지어주던 손.비 오는 날,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비 오니까 좋다’던 그 사람의 눈동자.​"그땐, 괜찮았는데…"​​처음엔 몰랐다.아니, 어쩌면 조금씩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외출 준비에 공들이는 시간, 갑자기 바뀐 말투,그리고 ‘나중에 얘기하자’로 미뤄지는 대화들.​"뭐 그렇게 화를 내? 예민하네 요즘."​그녀의 말투에 나는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게 됐다.묻는 순간, 내 마음이 다치는 걸 알았으니까.아내는 변했고, 나는 그걸 애써 모른 척하며 ‘결혼이 원래 이런가 보다’라고 믿었다.​​회식이 잦아졌고, 주말에도 '고객만남'이라는 말로..

이혼하고 나니깐

이혼하고 나니까, 모든 게 가벼워졌다.​누가 말했던가. 혼자는 외로운 게 아니라, 홀가분한 거라고.내가 그걸 몰랐더라면 평생 그 무거운 관계 속에 갇혀 지냈을지도 모른다.​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 나는 웃었다.무너진 가정이 아니라, 나를 위해 처음으로 선택한 '자유'였다.그날 이후로 나는 ‘나’를 중심에 두기 시작했다.​​​아침이 달라졌다눈을 뜨면 누구의 기분을 먼저 살필 필요도 없고,찬밥 먹었다고 투덜거릴 얼굴도 없었다.커피를 내리는 소리가 유난히 좋게 느껴졌고,식탁에 앉아 혼자 토스트를 베어 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이 맛에 혼자 사는 거구나.”​나를 위해 차린 밥상이, 오히려 더 따뜻했다.​​​​주말이 달라졌다아이와의 면접교섭 시간을 제외하면주말은 철저히 ‘내 시간’이었다.헬스장, 등산, 마트..

이혼의 이유

가끔, 누군가 묻는다.​“형 왜 이혼했어요? 성격 차이?”​나는 그냥 웃는다.애써 고개만 끄덕인다.다들 그렇게 넘기면, 나도 그냥 그렇게 묻어간다.​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그 질문 하나에 마음 한 켠이 사정없이 찢긴다.나는 ‘성격 차이’로 이혼하지 않았다.그녀가 외도를 했고, 나는 그걸 감당하지 못했다.그게 전부였다.​그런데 왜 나는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걸까.왜 매번 내 상처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걸까.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걸까.​​​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그럴 리 없다고, 설마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근데... 그녀의 휴대폰.잠금 해제되어 있던 채팅창.그리고 상간남과 나눈 메시지들.​​그 말을 본 순간,숨이 멎는 줄 알았다.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그녀는 어디에 있었..

왜 아직도 나는 바라보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버려졌고, 무너졌고, 부서졌는데도왜 아직도 그녀를 떠올리는 걸까.​그녀가 외도했다.두 말 할 필요도 없이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그런데아직도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리고,그녀가 웃던 모습을 기억하고,밤이 되면그녀의 빈자리가 이렇게나 선명하다.​왜?​사랑해서?아니, 지금은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프다.​그렇다면, 집착?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난 그녀를 붙잡고 싶은 게 아니라그녀와 함께였던 ‘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그녀를 좋아했던 내가사라지는 게 너무 무서운 건 아닐까?​함께했던 시간,같이 웃었던 순간,다 내 인생의 일부였는데그게 한순간에 쓰레기처럼 버려졌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거야.​그래서 끌리는 건지도 모르겠다.사랑이 아니라부정하고 싶은 상처를 끌어안고 ..

영화 언페이스풀을 보고 난 뒤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언페이스풀. (Unfaithful, 2002)​생각보다 조용한 영화였다.소리 대신, 표정과 눈빛으로 때리는 영화.​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자꾸 나 자신을 봤다.​리차드 기어.그의 침묵.그의 표정.그의 무너짐.​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던 순간을 상상하는 장면.책상 위에 놓인 책,어지럽혀진 침대 시트,방금 전까지 존재했던 열기.​그가 조용히 책을 보고,말없이 떠나는 그 장면에서나는 화면 속에 나를 봤다.​그 침묵이, 나였다.​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말해봤자 변하지 않는 걸 알아버렸을 때,그냥 멍하니 숨만 쉬는 그 느낌.​내가 겪었던 감정이그 영화 안에 너무 정확하게 담겨 있어서숨이 막혔다.​아내가 상간남을 만났을 때,그녀는 웃었을까?기댔을까?숨소리조차 바뀌었을까?​이젠 알고 싶지..

멍하게 하루가 간다

요즘은,그냥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창밖을 보고 있다가도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고,커피를 내리다 말고그 자리에 멈춰 서 있기도 한다.​누가 보면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하지만…사실 아무 생각도 없다.생각이 너무 많아서이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상태라고 하는 게 맞겠다.​이혼한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몸에 남은 아내의 그림자가아직도 여기저기서 발견된다.​가스레인지 위 작은 냄비 하나.욕실 선반에 놓인 헤어집게.텅 빈 옷장 구석.​그녀가 두고 간 물건들은 다 버렸는데,이상하게기억은 버릴 수가 없다.​가끔은 내 자신이 너무 무기력해 보여서내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게 될 때도 있다.그래도억지로 털고 일어나는 것도 이제는 그만두기로 했다.​그냥가만히 있는 게지금은 나를 덜 다치게 ..

그럼에도 회복을 꿈꿔본다

올해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공기도 맑고햇살도 따뜻한데,이상하게 나는 자꾸 속이 시리다.​사람들이 웃으며 인사하고,어떤 부부는 나란히 걷고,누군가는 사진을 찍는다.​그 틈에서 우리도 나란히 앉아 있다.나란히 있지만,온도는 조금 다르다.​작은 말에도 금방 표정이 굳고,서로 눈치를 본다.어디서부터 이렇게 멀어진 걸까.아니, 멀어졌다는 말보다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아직도 잘 모르겠다.​​이해받지 못한 말들,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마음들,그 모든 게 우리 사이에차곡차곡 쌓여 있는 줄은 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자리에 함께 있는 이 하루가,조금은 단단한 벽에작은 금 하나쯤은 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지금은 말이 서툴러도,표정이 어색해도,​잠시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들이결국 우리를 다시따뜻한 쪽으로 데려..

감정이 나를 흔들어도, 나는 나를 지킬 것이다

어떤 날은 유난히 힘이 빠진다.똑같은 하루인데,왜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걸까.​​그럴 땐, 내 마음속에서조용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화도 아니고, 눈물도 아니고,그저 무력감이 가라앉은 웅덩이처럼 마음을 짓누른다.​​그 감정이 익숙해질 때쯤,나는 깨닫는다.이건 내가 나를 너무 오래 내버려뒀을 때 찾아오는 신호라는 걸.

아내에게 받은 편지

“정말 미안해.”그녀는 그렇게 편지를 시작했다.​오랜만에 손글씨였다.삐뚤빼뚤하고 지워진 흔적까지 있는 편지였다.정성스러워 보였다.한 줄 한 줄,천천히 읽어 내려갔다.​“내가 저지른 실수로 당신에게 큰 상처를 준 것,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신뢰를 무너뜨린 것 정말 미안해.”​“변명할 여지도 없다는 걸 알아.나를 용서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만은 믿어줬으면 해.”​​​나는 그때, 내가 어떤 얼굴로 그 편지를 읽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손이 떨렸는지, 눈물이 났는지도 잘 모르겠다.​다만,“그래도… 그녀가 조금은 후회하고 있구나.”“정말로,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 걸 수도 있겠구나.”그런 기대가 아주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스며들었던 건 분명하다.​​​그로부터 며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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