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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백반이 되어버린 내 상처

“나 진짜 힘들어.”그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며칠을 망설였다.매일 밤 식탁에 앉아 밥은 먹었지만, 맛을 느낀 적은 없었다.아이와 대화는 했지만, 내 말은 늘 빙빙 돌았고나는 웃는 척하며, 내 감정을 바닥 어딘가에 접어두고 살았다.​그러다 정말 무너진 날,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았다.“사실… 아내가 외도를 했어.”목이 떨리고, 입술이 바짝 마르고,나는 마치 내가 무슨 죄라도 진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 그랬구나…”그 말에 눈물이 나려다, 이상하게 멈췄다.뭔가 이상했다.그 표정, 그 말투.위로보다도, 마치 자신이 무엇을 짐작하던 것이 맞았다는 확신을 얻은 듯한 눈빛이었다.​며칠 뒤,전혀 엉뚱한 사람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형, 요즘 많이 힘들다면서..

상간소송, 정말 해야하나?

소송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솔직히 두려웠다.그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이고,괜히 나까지 나쁜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정말 이걸 해야 하나?”내가 계속 던졌던 질문이었다.​아내의 외도를 처음 알게 된 건, 너무 우연이었다.기억을 돌이켜보면 짐작은 있었다.핸드폰을 들고 웃는 표정,새로 생긴 취미,자주 외출하면서도 목적지가 불분명해진 시간들.​하지만 나는 믿었다.아니, 믿고 싶었다.설마 설마 했던 것들이 어느 날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을 때,나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상간남.그 이름은 내 삶에서 가장 쓰디쓴 단어가 되었다.내가 세워 온 가정, 아이와의 추억,우리 둘만의 시간 속에 다른 남자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울었다.“그 사람이랑 진짜 감정은 없었어.”“당신이 너무 차가워져..

소장(소송장) 접수 이후

소장을 접수했다.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눌렀고,그 순간부터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아내는 아니었다.오히려, 더 달라졌다.그동안의 미안함, 눈물, 후회, 죄책감 같은 건소장이 날아간 날로 증발해버렸다.​"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그 사람은 그냥 잠깐이었어. 나도 힘들었단 말이야."​그녀는 상간남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를 처음엔 실수라고 했다.그다음엔 위로받았다고 했다.그리고 이젠, 마치 나보다 그가 더 따뜻했던 사람인 것처럼그의 장점을 늘어놓는다.​나는 묵묵히 들었다.더는 흥분하지 않았다.싸움의 판을 내가 깔아야 한다는 걸,이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소장 접수 전까지는 달랐다.그녀는 약해 보였다.내 앞에서 울고, 무릎까지 꿇고, 아이 이야기를 꺼내며 매달렸다.​"진짜는 당신이야.""아이를 생각해. 우..

나는 피해자다. 주저할 이유도, 미안할 이유도 없다

같은 집, 같은 식탁, 같은 욕실을 공유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나는 그걸 알아버렸다.그녀의 눈빛은 어느 날부터 낯설어졌고,말투는 마치 ‘멀어질 준비’를 하는 사람 같았다.처음엔 그냥 피곤한 줄 알았다.아이 일, 친정 문제, 회사에서의 피로감들.그런 걸 핑계로 삼기엔, 나도 너무 오래 참아온 것 같았다.​그리고 결국,나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다른 남자와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상간남.그렇게 적힌 단어가,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그 이름을 내 입으로 부르는 것도 불쾌했고,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조차 내 손에 힘이 빠지게 만들었다.​처음 마주한 증거는 단순했다.사진, 문자, 이상한 시간에 주고받은 통화기록.하지만 그 모든 걸 들이밀었을 때조차 그녀는 울지 않았다.오히려 나를 노려보며 ..

아내가 떠났다.

문을 열고 나간 건 그녀였지만,비어버린 집 안엔 내 숨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그녀의 가방도, 향수도, 아이의 사진도 사라졌는데가장 이상한 건,그날 이후로 내 목소리조차도 조용해졌다는 거다.​주변에는 이렇게 말했다.“별거 중이에요. 요즘 아내가 많이 힘들어서…”그렇게 말하며 나 자신도 점점 그 문장을 믿어야 할 것만 같았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그건 별거가 아니라,배신과 방치의 결과였고,그녀가 이 집을, 이 가정을 의도적으로 떠난 선택이었다는 걸.​그녀는 외도를 했다.정확히는, 내가 모르는 시간에 다른 남자와 감정을 나눴다.그 상간남이 누구인지, 언제부터였는지, 왜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건,그녀는 이미 나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어느 날,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홉 달, 연락이 왔다.

그녀가 떠난 지, 어느새 아홉 달이 흘렀다.처음엔 하루하루가 버티기 어려웠고,그녀가 현관문을 나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재생됐다.등을 돌렸던 뒷모습,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 눈빛.​나는 그 후로 매일 생각했다.‘오늘쯤은 돌아오려나’‘혹시 마음이 바뀌었을까’하지만 그런 생각도 어느 순간,의식의 표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기다리다가 포기하는 게 아니라,기다리는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거다.​사람은 무너져도 살아진다.그게 내가 지난 아홉 달 동안 배운 유일한 진실이었다.​그러던 오늘,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집에 가도 될까?”​그 짧은 문장을 읽고나는 몇 분 동안 핸드폰을 쳐다만 봤다.​왜 지금?무슨 일이지?갑자기 왜?​감정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예전 같았으면심장이 벌떡 뛰고,당장이라도..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간 지 다섯 달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간 지, 다섯 달이 지났다.정확히는 152일.나는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눈을 떴고,그녀는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마지막으로 본 건등 돌린 뒷모습과,약간은 망설였던 듯한 손끝.그게 전부였다.그녀는 다시는 그 문을 열지 않았다.​매일 밤,나는 혼자 식탁에 앉았다.처음에는 두 접시를 꺼내곤 했다.그냥, 습관처럼.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굳이 하나를 더 꺼낼 이유가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가끔은 문자를 보냈다."우리 한번 얼굴 보고 얘기하자.""괜찮아. 돌아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그 문장들을 몇 번이나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하지만 돌아오는 건읽음 표시 없는 공허한 회색 체크만이었다.​어느 날,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난 예전부터 이 집이 싫었어.""다신 돌아가지 않을 거야..

바람과 나무와 그늘

처음엔 그냥 조금 멀어진 줄 알았다.대화가 줄어든 것도,식탁에서 나누는 눈빛이 사라진 것도,서로의 하루를 묻지 않는 것도.결혼 생활이란 게 그런 거겠거니,조금 익숙해지고, 조금 지치고, 조금 무뎌지는 것일 거라 생각했다.​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출근 준비를 했고아내는 여전히 아이 도시락을 쌌다.우리의 삶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지만,속은 서서히 텅 비어가고 있었다는 걸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그녀가 변했다는 걸 느끼는 데엔 많은 단서가 필요하지 않았다.문득 사라진 웃음,갑자기 많아진 외출,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핸드폰의 각도.그리고 어느 날,그녀의 핸드폰 화면 속,낯선 남자의 이름.그가 보내온 메시지,그녀가 보낸 이모티콘.​그 순간,나는 모든 숨을 멈췄다.​상간남.그가 내 결혼의 균열 속으로..

다시 나로 살아가기

아내와 연락을 끊은 지 꽤 됐다.정확히 며칠인지는 세지 않았다.처음에는 하루하루가 가시밭길 같았다.그녀가 없는 공간,그녀가 없는 식탁,아이와 단둘이 있는 저녁 시간마다나는 뚜껑이 열린 채로 방치된 밥솥처럼덜컥거리는 감정을 끓이며 하루를 보냈다.​그녀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나는 감정의 끝을 경험했다.배신이라는 단어는 너무 문어체 같았다.그건 ‘나를 잘라낸’ 느낌이었다.‘우리’라는 말로 엮여 있던 모든 기억들이단칼에 끊어진 것 같았다.​처음엔 매일 메시지를 보냈다."왜 그랬어?""진심이었어?""언제쯤 돌아올 건데?"하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혹은, 가끔의 짧고 무심한 대답들."나도 정리가 안 돼.""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그녀는 상간남과의 관계를 부정하지도,완전히 인정하지도 않았다.그저 회피..

「몰랐다고? 그래서 다 무죄가 돼?」

“그녀가 유부녀라는 사실, 알고 있었습니까?”변호사의 첫 질문이었다.질문이 끝나자마자, 상간남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뇨… 전혀 몰랐어요. 진짜예요.오히려 저한테… 남편 없다고 했어요.혼자 살고 있다고….”​그 말을 듣는 순간,내 손끝이 서늘해졌다.심장이 아니라 손가락부터 저려오는 이상한 감각.숨을 길게 들이켰지만, 제대로 마셔지지 않았다.​‘그녀가 유부녀라는 걸 몰랐다.’그래서 그가 무죄라고?그 말이 법정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소름 끼쳤다.​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숙인 채,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 하나하나를 조용히 삼켰다.​아내는 아이들 학원 끝나면 김밥을 사서 데려왔다.가끔은 학원 앞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을 귀찮아했고,집에 돌아와선 나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