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난 지, 어느새 아홉 달이 흘렀다.
처음엔 하루하루가 버티기 어려웠고,
그녀가 현관문을 나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재생됐다.
등을 돌렸던 뒷모습,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 눈빛.
나는 그 후로 매일 생각했다.
‘오늘쯤은 돌아오려나’
‘혹시 마음이 바뀌었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어느 순간,
의식의 표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다리다가 포기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거다.
사람은 무너져도 살아진다.
그게 내가 지난 아홉 달 동안 배운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러던 오늘,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에 가도 될까?”
그 짧은 문장을 읽고
나는 몇 분 동안 핸드폰을 쳐다만 봤다.
왜 지금?
무슨 일이지?
갑자기 왜?
감정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심장이 벌떡 뛰고,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낯선 냉정함이 먼저 찾아왔다.
그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며
내 안에선 세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첫째,
그녀가 정말로 후회하고 있는 걸까?
그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상간남과의 모든 관계를 정리한 뒤,
돌아올 용기를 낸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말보다 행동으로 드러나는 존재다.
나는 더 이상 말만 믿을 수 없다.
둘째,
혹시 외부 상황이 변한 건 아닐까?
상간남과의 관계가 틀어졌거나,
현실적인 어려움,
경제적인 문제 같은 것들이 그녀를 되돌아오게 만든 건 아닐까?
사랑이 아니라
‘필요’ 때문이라면,
그건 돌아옴이 아니라
잠시 머물 곳을 찾는 방황일 뿐이다.
셋째,
이건 감정 확인용 시험일 수도 있다.
내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지,
여전히 마음이 남아 있는지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확인하려는 시도.
혹은
이혼 소송이 오가기 전에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한 모종의 움직임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런 것도 계산하고 움직인다.
그녀가 그런 사람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돌아오면 좋겠지만, 그 전에 우린 얘기를 해야 해.”
이제는 선택의 주체가 나다.
그녀가 문을 열어야 다시 들어오는 게 아니다.
그 문 앞에 나는,
‘묻고 듣고 판단하는 사람’으로 서 있을 것이다.
나는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조용히 세 가지를 적었다.
왜 돌아오는지 정확히 들을 것.
본인의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확인할 것.
되풀이될 가능성 없는지 스스로 설명하게 할 것.
나는 용서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녀가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녀가 떠난 이후,
나는 나 자신을 하나하나 다시 세웠다.
아이와의 관계도,
무너진 일상도,
산산조각 난 자존심도.
나는 한 번 무너졌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
다시 일어났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젠,
같은 자리에서 같은 상처를 또 받을 순 없다.
그녀가 정말로 돌아오고 싶은 거라면,
그건 내 관용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만약 그녀가 그것을 모르고 돌아온다면,
나는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그건 미움이 아니다.
그건 내가 배운,
다시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오늘 밤, 나는 편지를 쓰지 않는다.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이젠 나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하나만 있다.
그녀가 다시 이 집 앞에 선다면,
나는 문을 열기 전
그녀의 눈을 볼 것이다.
그리고 묻겠다.
“돌아오고 싶은 거야?
아니면,
잠시 멈추고 싶은 거야?”
그 대답이
내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결정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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