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고등어백반이 되어버린 내 상처

한해동안 2025. 4. 30. 07:05

“나 진짜 힘들어.”

그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며칠을 망설였다.

매일 밤 식탁에 앉아 밥은 먹었지만, 맛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아이와 대화는 했지만, 내 말은 늘 빙빙 돌았고

나는 웃는 척하며, 내 감정을 바닥 어딘가에 접어두고 살았다.

그러다 정말 무너진 날,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았다.

“사실… 아내가 외도를 했어.”

목이 떨리고, 입술이 바짝 마르고,

나는 마치 내가 무슨 죄라도 진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랬구나…”

그 말에 눈물이 나려다, 이상하게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그 표정, 그 말투.

위로보다도, 마치 자신이 무엇을 짐작하던 것이 맞았다는 확신을 얻은 듯한 눈빛이었다.

며칠 뒤,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형, 요즘 많이 힘들다면서?”

“걱정돼서 그래. 내가 들은 얘기로는…”

그 순간, 내 얼굴이 굳었다.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꺼낸 말이

누군가의 저녁 식탁 위

‘고등어백반’ 반찬거리로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울며 말했던 그 시간,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라고 시작했던 이야기.

그 모든 게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게 또 다른 배신이구나 싶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결심했다.

“말하지 말자.”

위로할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내 고백을 들려줄 이유는 없다는 걸.

내 진심에 숟가락 얹는 사람들은,

결국 내 편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여전히 집에 있다.

아이 앞에선 자연스러운 척하지만,

우리 둘 사이엔 벽이 생겼다.

그녀는 상간남에게서 돌아왔다는 듯했지만,

그녀가 돌아온 건 책임 때문이지, 사랑 때문이 아니란 걸

나는 뼛속까지 알고 있었다.

소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아직 모른다.

내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젠 말로 휘둘리고 싶지 않다.

말로 오해받고,

말로 가볍게 잊히고,

말로만 매달리던 지난 시간은 이제 충분하다.

내가 힘들다는 걸,

내가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걸,

내가 매일 밤 그녀의 메시지 로그를 복사해서 저장하고 있다는 걸

누구도 모른다.

나 혼자 조용히, 묵묵히 기록하고,

한 줄씩 법의 언어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요즘 나를 자꾸 건드린다.

“당신, 왜 이렇게 무표정해?”

“뭘 그렇게 생각해?”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감정은 이미 내가 아닌 곳에 쏟아졌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들,

“그 사람은 그냥 위로였어.”

“당신이 너무 차가웠잖아.”

그 말은 내 가슴을 갈라놓기에 충분했고,

나는 더는 그 틈에 피 흘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씻고 나와 거울을 보는 동안

나는 거실 소파에서 조용히 그녀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저 사람은 내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떠나보낼 사람이다.

내가 그렇게 어렵게 꺼낸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가십이 되었을 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딱 하고 끊어졌다.

고등어백반.

내 상처는 그렇게, 소금에 절여지고 말았다.

구워지고, 씹히고, 아무 대가 없이 소비됐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나 혼자 밥을 먹는다.

조용히, 말없이, 고등어 없이.

식탁에 놓인 찬은 단출하고,

밥은 전자렌지에서 데운 흰쌀밥 한 공기뿐이지만

그건 내가 선택한, 내 자존을 지키는 식사다.

나는 이제

내 상처를 내가 덮기로 했다.

다시 웃고 싶은 날이 오면

그땐 내 스스로 웃을 수 있도록.

이 집의 조명은 여전히 따뜻하고,

아이의 숨결은 고르고,

나는 여전히 남편이자 아빠지만

이젠 나 자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나는 조용히 눈을 뜨고

커피를 내릴 것이다.

고등어 없이,

잡음 없이,

남의 입에 오르지 않는 나의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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