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눈을 떴다.
숨은 쉬었고, 커피도 마셨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가 어색하다.
그녀가 없는 하루는,
마치 나 없이 텅 빈 옷을 입은 것처럼 헐겁다.
우리는 10년을 함께했다.
첫사랑이었다.
서로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닮아 있었고
둘 다 술 담배를 싫어해서
시간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국내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우리였는데,
그런 아내였는데,
어느 날, 알게 됐다.
그녀는 상간남과 감정을 주고받고 있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게 너무 정교하고 완벽했기에
이 현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핸드폰 화면 속
"오늘도 기다릴게요"
"당신이 있어서 하루가 특별했어요"
그런 메시지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잠든 동안,
누군가가 내 삶을 몰래 뒤집어엎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울며 말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냥, 잠깐… 흔들렸던 거야."
나는 묻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어?'
'얼마나 자주 만났어?'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사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여행지의 풍경,
그녀가 웃으며 찍어준 내 사진,
아이처럼 좋아하던 그녀의 눈빛…
그 모든 게 전부 뒷면으로 접힌 사진처럼 흐려졌다.
그리고 난 매일 되묻는다.
"내가 그렇게 부족했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나는 사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꼈고,
웃게 해주려고 애썼고,
지켜주려 했다.
그녀의 외도는
내 사랑의 실패가 아니다.
그녀의 선택이었고,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몇 주 동안은
집안의 모든 사물이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식탁 위 머그잔,
욕실에 걸린 샴푸 냄새,
가끔 흘러나오는 여행 사진 속 배경.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괴롭혔다.
이별이 아니라,
삶 전체가 무너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 루틴을 바꿨다.
매일 가던 카페 말고 다른 카페를 찾아다녔고,
그녀와 함께 누웠던 침대에서
거실로 이불을 옮겨와 잠을 잤다.
작은 변화였다.
하지만 그 작은 변화가
내 감정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줬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글을 쓰면 내 마음이 명확해진다.
슬픔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분노가 언제 다시 피어오르는지를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오늘도 썼다.
"나는 나를 지키고 있다."
"상처는 크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집을 나간 뒤,
별다른 연락이 없다.
한두 번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정리하자"는 말뿐이었다.
그건 미안함도, 반성도 없었다.
그냥 덜 미안하게 끝내려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이제 내가 다칠 일도,
반응할 이유도 없었다.
상간남에겐 위자료 청구를 했다.
그것도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처벌이 목적은 아니었다.
내가 당한 일을 세상에 증명하는 과정이었고,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고요하다.
분노도, 슬픔도, 약간은 무뎌졌다.
그렇다고 치유된 건 아니다.
그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응급처치를 마친 느낌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녀와의 여행 사진을 본다.
그 시간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땐 정말 행복했고,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녀가 떠났고,
나는 버텼다.
지금도 버티고 있다.
내가 오늘 하루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로 했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그 진심을 모른 척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자신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정말 수고했어.
지금까지 잘 버텼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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