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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정이든 응원할게요.

어느 날 아침, 거울 앞에 섰다.면도를 하려다 문득, 내 얼굴이 낯설었다.피곤해서일까, 나이 들어서일까,아니면…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일까.확실한 건, 예전엔 저 눈빛 속에 웃음이 있었다는 거다.지금은 뭐랄까.싸우다 지쳐서 겨우 선 사람 같은 눈.그래도 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그녀의 외도를 처음 알았을 땐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되짚었다.회사일에 치여서,아이가 어려서,혹은 내가 예전보다 무심해졌나.나는 내 죄를 찾느라 바빴다.그런데 이상하지.나한테 벌어진 일인데,내가 가해자인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미안하다고 했다.몇 번쯤은 울기도 했다.하지만 그 눈물은 마치 연기 같았다.죄책감의 눈물이 아니라들킨 사람의 눈물처럼.그래서 내가 물었다.​“그 사람을 사랑했어?”​그녀는 대..

그건 당신의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그녀의 달라진 분위기를 처음 눈치챈 건,퇴근하고 돌아온 저녁 식탁에서였다.아무렇지 않게 김치를 집어주는 그녀의 손끝이예전보다 훨씬 낯설게 느껴졌고,무심한 표정 뒤에 감춰진 뭔가가 나를 스쳤다.​휴대폰을 손에 쥔 채 웃음을 참는 모습,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멈추는 말투,평소보다 잦은 야근과 갑작스러운 주말 일정.이상한 기운은 점점 커졌고,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그녀의 동선을 확인하기 시작했다.​결정적인 건, 회사에서 반차를 내고 돌아오던 어느 평일 오후였다.커피나 한 잔 하자며 들어선 동네 카페.유리창 너머, 그녀가 앉아 있었다.낯선 남자와 마주 앉아 웃고 있었고,손끝이 맞닿아 있었다.그게 전부였다.딱 그 정도의 거리와 표정이면,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상간남.그녀가 숨겨놓은, 나 아닌 ..

집요한 그녀와 단호한 나의 일주일

이혼이라는 건 서류에 도장을 찍고, 법원에서 종결 처리되면 끝나는 줄 알았다.진짜 그렇게 믿었다.내가 그녀를 버린 게 아니고,그녀가 먼저 상간남을 선택했고,가정과 아이보다 그 짜릿한 사랑놀음을 우선으로 여겼기에,나는 더는 잡지 않았다.​그녀는 떠났다.큰 소리로, 아주 당당하게.“난 남편도, 자식도 필요 없어. 이 사람 하나면 돼.”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아이의 짐을 챙기고,우리 둘의 흔적이 남은 집을 정리하고,기억을 하나씩 지워냈다.사진을 없애고, 벽지를 바꾸고, 가구 배치를 바꾸며내 삶의 구조 자체를 바꿨다.​그녀가 내게 남긴 것은 상간남과의 판결문,조용한 아들의 침묵,그리고 나 혼자만의 무너짐이었다.하지만 버텼다.이겨냈다.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골목에서나와 아이는 나름대로 평화를 만들..

잘 살아보자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는 말이 진짜구나 싶었다.나는 그날, 퇴근 후 평소처럼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그리고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 잠깐 떠올랐던,익숙하지 않은 이름 하나.​그게 시작이었다.​처음엔 의심이었다.설마.우리 사이에 설마 그런 일이 생길까 싶었다.내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 그녀의 커피잔을 챙기고,잠들기 전에 아이 이불을 덮으며 서로를 챙긴 이 평범한 일상 안에타인이 스며들 수 있을까.​하지만 의심은 곧 확신이 되었고,확신은 분노가 되었다.그녀는 처음엔 부인했다.“그냥 연락만 했어.”“업무적인 관계였어.”“나도 나를 모르겠어.”​나도 그랬다.나조차도, 나 자신을 모르겠더라.내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구나.이렇게까지 ..

나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겠다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상간남과의 소송도 마무리됐고,법적인 책임도 물었고,그녀는 고개를 숙였고,나는 참았다.이 정도면 정리가 됐다고 생각했다.​그런데도 불안은 계속 남았다.문득 그녀가 휴대폰을 만지는 손끝을 보면,어디론가 시선을 두는 그 짧은 찰나를 보면,나는 다시 안쪽에서 무너졌다.혹시 아직 연락하는 건 아닐까?그냥 겉으로만 정리한 척하고, 뒤로는…그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물고 늘어졌다.아무것도 안 보이게 만들고,평범한 하루조차 버겁게 만들었다.​한밤중, 문득 깨어나면 휴대폰부터 들여다봤다.그녀의 행동, 그녀의 눈빛,그녀의 흔적에서 뭔가 단서라도 찾고 싶었다.전화번호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그 상간남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내 마음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다.​하지만 나는 ..

기.운.내.

한동안은 아무 말도 못 했다.그녀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부터, 내 안에 있던 모든 단어들이 다 사라진 것 같았다.화를 낼 수도 없었고, 울 수도 없었다.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 채,화면 속 메시지 몇 줄에 전부를 잃은 기분이었다.​처음엔 부정하고 싶었다.아닐 거야, 아닐 수밖에 없어.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함께 나눈 시간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하지만 증거는 너무 명확했고,무엇보다 그녀의 눈빛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미안해.”그녀는 짧게 말했다.하지만 그 ‘미안’이라는 말 안엔아무 책임도, 아무 후회도 담겨 있지 않았다.그건 그냥 상황을 피하려는 한숨 같은 말이었다.​처음엔 그녀를 원망했다.상간남을 증오했다.둘 다 나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갔다고 생각했다.내가..

후회는 결국 남는 사람의 몫이다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사람이 사람을 향해 이렇게 따뜻할 수 있구나, 처음 알게 해준 사람이었다.매일같이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눈을 마주치면 웃음부터 터지던 시간들.그 시절엔 우리가 헤어질 거라곤,이토록 낯선 감정으로 끝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결혼을 하고,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디며 버텼다.사는 게 쉽지 않았고, 각자의 역할 속에서 지쳐갔지만그래도 나는, 그녀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그녀가 웃으면 피곤함도 잊었고,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놓였다.그래서 나는 몰랐다.아니, 모르고 싶었다.​언제부턴가 그녀는 자꾸 다른 공간에 마음을 뒀다.같은 집에 있어도, 말은 줄었고, 눈빛은 피했다.“요즘 피곤해”라는 말로 잠을 피하고,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

이혼서류에 마지막 도장을 찍던 날

펜을 쥔 손이 조금 떨렸다.생각보다 가볍게, 생각보다 덤덤하게 서류를 넘겼고,마지막 한 장이 테이블을 떠나면서 모든 게 끝났다.그녀는 내 옆에 없었다.이젠 당연했다.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차창 밖을 바라봤다.흐린 듯 맑은 하늘.묘하게 마음속과 비슷한 날씨였다.“그 여자,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달랐다.“잘 살아라.”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처음 그녀의 외도를 알았을 땐 믿을 수 없었다.어떻게 우리 사이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결혼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고,함께 미래를 그렸고,자식까지 있는 사이였는데.그런데도 그녀는 상간남에게 웃고 있었다.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그의 손길에 기대며,내게는 점..

카테고리 없음 2025.05.03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오늘도 눈을 떴다.숨은 쉬었고, 커피도 마셨다.하지만 여전히 하루가 어색하다.그녀가 없는 하루는,마치 나 없이 텅 빈 옷을 입은 것처럼 헐겁다.​우리는 10년을 함께했다.첫사랑이었다.서로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닮아 있었고둘 다 술 담배를 싫어해서시간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국내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그런 우리였는데,그런 아내였는데,어느 날, 알게 됐다.그녀는 상간남과 감정을 주고받고 있었다.​처음엔 믿지 않았다.아니, 믿을 수 없었다.모든 게 너무 정교하고 완벽했기에이 현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졌다.​핸드폰 화면 속"오늘도 기다릴게요""당신이 있어서 하루가 특별했어요"그런 메시지들을 보면서나는 내가 잠든 동안,누군가가 내 삶을 몰래 뒤집어엎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울며 말했다."내가 ..

오늘도 혼자 이겨냅니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내가 가장 많이 웃었던 사람이었고,내가 울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날들,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그게 바로 아내였다.​그래서, 가장 먼저 아내에게 기대고 싶었다.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던 사람인데도차라리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만큼그녀는 내 전부였다.​그런데 그 사람이 내 등을 찔렀다.그날 밤, 무심코 충전기 찾으려다 열었던 서랍 속두 번째 휴대폰이 나를 부수었다.​그 안에는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주고받은 상간남과의 대화들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나에게 ‘지쳤다’ 했지만,그에겐 ‘보고 싶다’고 썼더라.​심장이 식었다.숨이 쉬어지지 않았다.나는 울지도 못했다.그게 처음이었다.내 삶의 구심점이한순간에 부정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