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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인 줄 몰랐다

어떤 날은 분노가 먼저 올라오고, 어떤 날은 허무함이 먼저 찾아온다.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이미 나는 무너졌다.​하지만 세상은 그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상해주지 않는다.누가 잘못했는지, 얼마나 고의였는지, 어떤 증거가 있는지를 따진다.나는 그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동시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문제였으니까.​나는 상간남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내 감정을 유일하게 제3자가 이해해줄 수 있는 통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내 아내가 저지른 짓을 용서하지 못하겠지만,그녀와 함께 그 짓을 저지른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했다.​그런데 변호사를 만나 가장 먼저 들은 질문은생각보다 간단했다."그 사람이, 즉 상간남이, 아내가 유부녀라는 ..

외도,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처음엔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아니, 적어도 내 아내만큼은 아니라고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살았다.​하지만 모든 의심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그녀가 보낸 메시지들,그녀의 일정을 빌미로 한 외출들,그녀의 감정이 더 이상 나에게 머물러 있지 않다는 명확한 증거들.​그리고 마침내,나는 상간남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그녀와 언제부터 연락을 했는지하나하나 파고들수록, 숨이 막혀왔다.​“그냥 술김에 실수한 거야.”“그 사람은 그냥 위로해준 거야.”“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그녀가 말한 변명들은하나같이 빈 껍데기 같았다.내가 아는 그녀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무너질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는 언제나 철저했다.핸드폰 잠금, ..

200만원짜리 시계를 망치로 부쉈습니다

서랍 깊숙이 들어 있던 그 시계를 처음 본 건 몇 달 전이었다. 반짝이는 스틸 스트랩, 아내 손목에선 어울리지 않을 고급스러움.​"이거 뭐야?"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예전에 친구가 준 거야. 그냥 선물 받은 건데, 안 차니까 넣어뒀지 뭐."​그 말이 이상하게 걸렸지만, 더 묻지 않았다.그땐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 몰랐다.​며칠 전, 정리하던 사진첩 속에서 이상한 걸 봤다.여자 손목과 남자 손목이 나란히 놓인 사진.둘 다 같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내가 서랍에서 본 바로 그 시계.​사진 아래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우리 둘만 아는 기념일, 평생 간직해."​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내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되돌아왔다.그녀가 시계를 안 차던 이유,서랍 깊숙이 숨겼던 이유,그리..

그 가방, 예쁘다

처음엔 그냥 가방인 줄 알았다.깔끔한 색감, 내가 보기에 무난한 디자인, 어느 날 불쑥 그녀 손에 들려 있던 그것.​"자기야, 이거 예쁘지 않아?"그녀가 약간 들뜬 듯 물었다."응. 어디서 샀어?""내가 좀 모아서 산 거야. 이번엔 나 자신한테 선물하고 싶더라고."​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았지만,그날따라 웃는 얼굴이 조금 어색했던 것 같다.나는 그걸 그냥 기분 탓이라고 여겼다.그래, 살다 보면 아내가 자기 위로 삼아 지른 물건 하나쯤은 괜찮지.그래서 예쁘다고 했다."응. 예뻐. 잘 어울린다."​지금 생각하면, 그 한마디가 너무 역겹다.내가 예쁘다고 말했던 그 순간,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상간남이 선물한 그 가방을 들고,내 앞에 서서,내 눈을 보고,내 칭찬을 들으며 웃고 있었다.​그 사실을 안 건..

당신의 회복과 존엄

“정말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그녀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그 눈물에 진심이 담겨 있었는지, 나는 끝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아니, 어쩌면 확신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그녀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사과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뒤였다.마치 불이 꺼지고 나서야 소화기를 찾는 사람처럼.​나는 그동안 얼마나 애써왔던가.이 가정을 위해, 아이를 위해, 그녀를 위해.퇴근 후에도 집안일을 나눠 하고.평소엔 표현이 부족하다며 지적받았지만, 적어도 나는 배신하지는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달랐다.상간남과 나눈 메시지, 서로를 부르던 다정한 호칭,주말마다 내가 출근한 사이 함께했던 데이트 코스들.모든 걸 알고 나서..

이제는 미안하단 말도, 당신의 눈빛도 나한텐 의미가 없어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그녀가 처음 무릎을 꿇던 날,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눈물은 흘리지 않았고, 분노도 튀어나오지 않았다.그저, 속이 비어버린 느낌이었다.​그날따라 그녀의 얼굴이 낯설어 보였다.아니, 그 전에 이미 나는 그 눈빛이 변해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언젠가부터 내 눈을 피하던 시선,뭔가를 숨기듯 핸드폰을 감추던 손길,평소엔 귀찮아하던 화장을 갑자기 다시 시작한 그 무심한 습관들.​“그 사람은 그냥, 나한테 따뜻했어…”​그녀가 처음 상간남 이야기를 꺼냈을 때,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그녀가 선택한 말의 어휘조차 끔찍했다.‘따뜻했어’라는 그 한 마디는우리 사이엔 더 이상 온기가 남지 않았다는 고백이기도 했다.​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무너져갔다.출근길에는 정신없..

넌 잘하고 있어. 다시는 속지 마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건 오랜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라는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말은 했지만 눈은 피하고, 고개는 숙이지만 입꼬리는 떨지 않는 사람. 나는 그 낯선 표정을 마주하며 속으로 되뇌었다.​"이제야 너의 진짜 얼굴을 보는구나."​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처음엔 단지 피곤하다고만 했다. 회사일이 많다고,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늦는다고, 회식이 많아졌다고. 나는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여자니까, 내가 사랑했던 여자니까.​그러다 어느 날, 아이의 사진을 함께 보며 웃던 그녀의 눈빛이 공허하다는 걸 느꼈다. 대화 중에도 자꾸만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던 그녀. 새로 바뀐 향수, 늘어나던 야근, 감정 없는 대답들. 모든 것이 ..

당신의 분노, 슬픔, 역겨움까지

그날 밤, 아이들 방에서 울리는 알림음을 들었다. 평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텐데, 왠지 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됐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낯선 번호에서 왔고, 그 문장은 짧고 단순했다.​“아들아, 잘 지내고 있니. 엄마는 네가 보고 싶어”​그 순간, 손이 떨렸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멈춘 것처럼 고요해졌고, 이내 다시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메시지는 아이들 폰으로 왔다. 내가 직접 받았으면 단칼에 무시했을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향한 그의 접근. 그건, 내가 이 사람을 더는 인간으로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아내는 이미 나를 버렸다. 말도 없이, 변명도 없이. 그저 점점 나를 멀리하고, 어느 날 아예 지워버리려 했다. 나는 그걸 아무 말 없이 지켜봐야만 했고, 그녀의 이중적인 얼굴을 하나둘 알아갈수록..

아내외도 앞에 선 남편

“당신이랑은 더 이상 못 살 것 같아.”​그녀는 그렇게 말했다.정확히 말하면,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누군가 나를 쥐고 흔드는 것 같았고,숨이 막혀왔다.​무슨 말인지 묻지도 못했다.그녀의 눈동자는 싸늘했고,어느 순간부터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는 걸그제야 알았다.​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찾으려 했다.일에만 집중해서?육아에 더 적극적이지 못해서?그녀가 원했던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해서?​수없이 나를 의심하고, 되돌아보고, 후회했다.하지만 결국 알게 됐다.그게 아니었다.​그녀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정확히는, 다른 ‘사람’에게.그리고 그 사람은 상간남이었다.​확증을 갖기까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감은 이미 와 있었고,증거는 얼마든지 있..

한 걸음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혹시 너, 요즘 누구 만나는 사람 있어?"​그날 저녁, 퇴근한 아내에게 무심하게 던진 질문이었다.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너무 많은 단서들이 있었다.바뀐 향수, 갑작스런 외출, 웃으며 숨기는 휴대폰 화면,그리고 무엇보다 눈을 피하는 눈빛.​그녀는 놀라는 듯 멈췄고, 그러더니 곧 웃었다."무슨 말이야. 바빠서 정신 없는데, 내가 누굴 만나?"​그 순간 확신했다.이건 거짓말이었다.내가 알고 싶은 진실은, 이제 직접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칠 후, 나는 그녀의 메시지 기록을 보게 됐다.우연이 아니라, 의도였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봐야 했다.그 안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그녀’가 있었다.​상간남과 주고받은 말들,"그날 너무 설렜어","다음엔 더 오래 있고 싶어","나… 너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심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