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내가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화면을 열었다.
톡창에 올라온 말풍선 하나.
“오늘도 네 생각뿐이었어.”
그 문장을 읽고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냥 친구겠지, 그냥 장난일 거야.
하지만 사진, 이모티콘, 몇 달 전부터 이어진 대화 기록을 보며
내 가슴은 뜨겁게 끓어오르다, 차갑게 식었다.
이게 우리 결혼의 끝이겠구나.
첫 감정은 분노도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허탈함.
이 모든 시간이 허상이었다는 자괴감이 나를 집어삼켰다.
며칠을 아무 말 없이 보냈다.
아내는 평소처럼 아이를 챙기고, 밥을 하고,
잠들기 전 내게 “잘 자”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 입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내가 아직도 그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탐정사무소를 찾았다.
그 선택은 내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이성이었다.
감정에 치우쳐 폭발하지 않기 위해,
내가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그들은 사진을 보내왔고,
내가 원했던 진실은 생각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고통스러웠다.
호텔 로비에서 웃는 모습.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는 장면.
그리고 방 안에서 나와 손을 털며 나란히 걷는 두 사람.
그 장면이 나를 가장 괴롭게 했다.
내 아내가,
내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애정을
다른 남자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다 알고 있어.”
그녀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눈을 떴다.
그 표정엔 두려움도, 당황도 아닌
포기한 듯한 차분함이 있었다.
"미안해."
그 단 한 마디.
그래서 더 분했다.
"왜 그랬어?"
"왜 나한텐 안 된다고 하고,
그런 짓은 그 남자랑 했어?"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게 뭐야?"
나는 울부짖듯 말했고,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이
내게는 비수보다 날카로웠다.
상간남은 내 앞에 무릎 꿇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 합의서를 내밀었고,
그는 조용히 사인했다.
그 순간조차 통쾌하지 않았다.
그건 승리가 아니라
내 사랑의 장례식 같았다.
나는 혼란 속에서
다시 아내를 품고 싶었다.
내 것이었다는 그 사람을,
다시 내 안에 붙잡아두고 싶었다.
"우리… 다시 관계를 갖자."
내가 말했다.
아내는 눈을 피하며
강하게 대답했다.
"미쳤어?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이제… 당신이 너무 낯설어."
그 말이 내 심장을 찢었다.
그 상간남과는 관계를 하면서
나랑은 하지 않겠다는 그 말.
그 자체가 내 존엄을 무너뜨렸다.
나는 더럽혀진 건 그녀인데,
왜 내가 수치스러워야 하지?
우리는 지금도 한 집에 산다.
아이는 웃으며 나를 “아빠”라 부르고,
나는 그 웃음을 지키기 위해
이 모든 걸 삼키며 살아간다.
아내는 말한다.
"시간이 필요해. 나도 나를 모르겠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네가 누군지 똑똑히 알 것 같아.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겠어졌다.
지금 이 집 안에서
나는 투명인간이다.
밥은 함께 먹지만 말은 없다.
이불은 따로 덮고,
눈빛은 스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떠날 수 없다.
아이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그녀를 다시 품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잔존해 있다.
사랑은 끝났을지 몰라도,
책임은 남았다.
그 책임이
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한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상간남에게도 가지 않았다.
결국,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그녀.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버림받은 나.
나는 오늘도 혼잣말처럼
일기를 쓴다.
나는 왜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쯤 진짜 나를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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