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의 아내였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아픔이다.
같은 집에 살고, 같은 침대에 눕지만
우린 더 이상 부부가 아니었다.
피부는 닿지 않았고, 대화는 깊지 않았으며,
침묵은 벽이 되었다.
처음엔 몰랐다.
그녀가 멀어졌다는 걸.
아니, 사실은 눈치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설마’라는 부질없는 믿음으로.
그녀가 외도를 했다는 걸 알게 된 건
우연히 노트북을 켰을 때였다.
브라우저 히스토리에 남겨진 상간남과의 메시지 기록.
연애 초기처럼 들뜬 말투.
“어제 너무 좋았어. 아직도 그 감촉이 선명해.”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녀가 내게서 멀어진 게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의 품에 있었다는 사실에
내 손끝이 저렸다.
그녀는 울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무기력했고, 오히려 담담했다.
“당신이랑은 안 되니까.”
그 한 마디는 칼처럼 나를 베었다.
“그게 다야?”
“오래 전부터였어.”
“그래서 그 남자를 택한 거야?”
“그 사람은… 그냥 나를 여자처럼 대해줘.”
나는 그 순간,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남편도, 남자도 아닌, 그저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동거인.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늘 내 몸이 아픈 걸 피했잖아.”
“질건조도, 생리도, 갱년기 증상도… 그냥 꺼리는 느낌.”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랬다.
한때는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성적인 거리감도, 육체의 피로도 자연스러운 노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걸 외로움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른 품을 찾았다.
나는 분노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는 걸 느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말이 더 끔찍하게 아팠다.
그 남자와 함께 있었던 그 순간,
그녀는 내가 되어주길 바랐던 무언가를
그에게서 느꼈던 것 같았다.
나는 병원을 제안했다.
“같이 가보자. 당신 몸도, 내 몸도, 이제는 챙겨야 할 때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말없이 집을 나갔다.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간다는 말도 없이,
그냥 조용히,
마치 내게 이별을 통보하는 방식처럼.
남았다.
나는.
아이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그리고 고요한 밤의 정적과 함께.
거울을 보았다.
나는 많이 늙어 있었다.
눈 밑은 꺼졌고,
말라붙은 피부 위로 주름이 내려앉았다.
무엇보다도… 내 눈에 생기가 없었다.
이건 그녀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도 이 관계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녀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움이 아니라, 내 안의 외로움을 돌보기로 했다.’
나는 감정에게 이름을 붙였다.
오늘은 ‘무력함 씨’,
어제는 ‘수치심 군’이었다.
그 감정들이 올라오면,
나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걸었다.
15분, 그리고 30분.
나중에는 1시간도 걸었다.
움직이는 내 몸에서, 생명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손잡지 않아도,
내가 나를 붙잡고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루틴을 만들었다.
아침엔 따뜻한 죽,
점심엔 견과류와 물.
밤엔 자기 전, 복식호흡 3분.
잠들지 못하는 밤엔, 눈을 감고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나의 엄마처럼 나를 돌볼 것이다.”
외도라는 단어는
배신, 수치, 절망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깊은 상처는
내가 나를 버렸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붙잡는 대신,
내 자존감을 다시 세웠다.
상담도 받아봤고,
그녀와 마지막 대화도 했다.
“그 남자와 잘 되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더는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 나를 탓하지 않아서.”
그 말이 한때는 위로였지만,
지금은 차갑게만 느껴졌다.
이젠 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걸.
그리고 책임을 외면한 순간,
그 사랑은 끝났다는 것도.
나는 오늘도 걸었다.
공원 길을 따라, 나뭇잎 부스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는 외로운 게 아니었다.
무관심한 둘 사이에서 나는 더 고독했다.
이제, 나에게 되묻는다.
“괜찮아?”
“아직은 아프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어.”
그것이면 된다.
외도 후 회복은 끝이 아니라,
다시 나를 선택하는 매일의 결정이다.
#아내외도
#부부간무성욕
#배우자외도
#부부심리
#외상후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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