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아침, 커튼을 열지 않았다.
햇살이 들어오면 어쩐지 세상이 멀쩡해 보일 것 같아서, 그게 더 무서웠다.
모든 게 무너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시작되면 내가 더 바보 같을 것 같아서.
나는 지금 무너졌고, 세상도 함께 무너졌으면 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아내의 휴대폰. 잠금 패턴을 일부러 보려 한 것도 아니었고, 찾아보려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알림 하나가 떴고, 익숙하지 않은 이름, 어색한 문장, 다정한 이모티콘.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와 상간남의 관계.
나는 며칠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미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피곤해서, 예민해서, 괜한 의심을 한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내 감은 맞았고, 증거는 하나둘 더 쌓였다.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보다 진심이었다.
왜였을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내가 못나서일까, 재미없는 남편이라서일까, 아니면 그저 오래돼서 지겨웠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이제 겨우 세 살이다.
밤마다 같이 자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웃던 그 시간이 다 거짓이었던 걸까.
그녀는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해왔다.
마주 앉았을 때, 나는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오히려, 묻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든, 이미 내 안의 세계는 다 무너졌으니까.
그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내 눈치를 봤다.
그게 또 더럽게 서글펐다.
나를 속인 사람이, 나에게 눈치를 보는 게 웃기지 않은가.
죄책감이 아니라,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그 눈빛.
처음 며칠은 잠을 거의 못 잤다.
이불을 덮고 누우면, 그 장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상간남과 웃으며 걷는 그녀의 모습, 톡에 담긴 말투, 카톡의 하트.
나는 상상 속에서 수십 번 그 남자와 싸웠고, 수백 번 그녀를 원망했다.
그녀는 그걸 몰랐다.
내가 하루하루 얼마나 무너지는지, 내 몸 안에 분노가 얼마나 퍼지는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녀가 나간 뒤 혼자 남은 집에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마늘을 까고 있었다.
눈물이 나지 않아서 더 슬펐다.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그래도 덜 비참했을까.
아니, 나는 이미 감정이 닳아버린 사람 같았다.
그녀가 내게서 가져간 건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울며 말했다.
실수였다고, 한 번이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눈물도 믿을 수 없었고, 그 다짐도 공허하게 들렸다.
한 번의 실수로는 생기지 않을 말투, 행동, 익숙함이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나는 끝까지 믿지 않았다.
나는 거울을 봤다.
거기엔 피곤하고 말라버린 얼굴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내의 외도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너무 많이 깎아내렸다.
그래서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더는 이 사람에게 나를 설명하지 않겠다고.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고.
그래서 이혼을 준비했다.
상담을 받고, 증거를 정리하고, 조용히 서류를 꺼냈다.
그녀는 눈치를 챘고,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회복하고 싶다며, 다시 시작하자며, 아이를 위해서라도 참아보자며.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다.
이건 더 이상 용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고통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내가 사랑한다고 믿는 눈치였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사랑의 잔재는 어딘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더 사랑해야 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로서 서 있으려면
나 자신을 먼저 지켜야 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공기 속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내가 만든 이 가정이 무너진 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삶에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나는 오늘, 나를 위해 결심했다.
이제는 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 다시는 나를 잃지 않을 것이다.
'바람 바람 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의 마지막 경고 (0) | 2025.03.26 |
---|---|
무너진 믿음과 새 출발 (0) | 2025.03.26 |
이제는 내 삶을 찾을 차례 (0) | 2025.03.26 |
아내의 반성문 (0) | 2025.03.26 |
장모의 두 얼굴 (2) | 2025.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