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상의 결혼은 끝이 났다. 판결문을 받아든 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주방으로 가 커피를 내렸다.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은 멍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렇게 법적 부부가 아니게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집에 살고 있다. 딸이 고3이기 때문이다. 그녀도 동의했다. 이 시기만은 조용히 지나가자고. 아이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다는 점은 우리 둘의 마지막 남은 합의였다. 서로를 향한 애정은 없다. 그렇다고 미움도 사라졌다. 무뎌졌다.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말라붙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상태를 사람들은 ‘사실혼’이라고 부른다. 법적으로는 남남이지만, 여전히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우는… 말하자면 ‘가족인 척’ 살아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