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변했다는 걸 느낀 건 아주 작은 말투 하나였다.
똑같은 말인데, 똑같은 눈인데, 거기 담긴 온도가 달랐다.
예전에는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눈치를 보며 기다리던 사람이,
이젠 집에 있어도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한 그 무심함.
그건 단순한 권태가 아니었다.
처음엔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다.
우리도 결혼한 지 오래됐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누구나 이렇게 변하겠지.
나도 집안일에 더 적극적이지 못했고, 그녀가 피곤한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침묵하는 사이, 그녀는 상간남과 함께 웃고 있었다.
상간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그녀가 욕실에 두고 간 휴대폰,
꺼져 있는 줄 알고 손에 든 순간 울려온 알림 하나.
‘오늘도 보고 싶었어. 네 향기가 아직 남아 있어.’
그 짧은 문장이 내 마음에 뚜렷한 금을 그었다.
처음엔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녀가 내 아내이고, 우리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그 문장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안의 감각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두고 다른 사람을 품에 안았다는 걸.
그녀가 더 이상 나의 아내가 아니라는 걸.
나는 미친 듯이 부정했다.
그녀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에 매달렸다.
어쩌면 실수였을지도,
어쩌면 상간남이 그녀를 유혹했을지도.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상간남과의 일이 밝혀진 순간에도,
내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너는 항상 바빴어. 나한테 관심 없었잖아.”
“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차라리 욕을 듣는 게 나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정당화’였다.
나를 탓함으로써 자기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지쳤다.
나는 거울 속 나를 보았다.
어깨는 굽었고, 눈빛은 죽어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내가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이상 그녀를 붙잡지 않기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그녀는 이혼 얘기를 꺼내자 당황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할 거야?”
나는 말했다.
“그래. 이제는 나를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으니까.”
며칠 후, 그녀는 다시 태도를 바꿨다.
“미안해. 진심이었어.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그녀는 울었고,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 손길에서 나는 죄책감은 느꼈어도, 사랑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너는 나를 떠나는 게 두려운 거야.
하지만 나는 너랑 계속 사는 게 더 두려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이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었다는 걸 느꼈다.
그 후로 나는 나를 위한 삶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내 감정을 글로 적었고,
잠든 아이 옆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나를 다독였다.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이젠 피를 멈추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아이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나는 너에게 건강한 아빠로 남고 싶다.
이기적이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아빠로.
그래서 내가 나를 회복해야 한다는 걸,
그게 진짜 아버지의 책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집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는다.
아이 앞에서는 연기를 하지만,
서로의 그림자는 더 이상 겹쳐지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겪으며 배웠다.
사랑은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외도는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저지른다는 것을.
나는 지키려 했고, 그녀는 도망쳤다.
그 차이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지금 나는 혼자다.
하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 오히려 평화를 느낀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누군가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나를 위해 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랑을 거두기로 했다.
그건 복수가 아니라, 나를 살리는 길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선택이 나를 더 나은 아버지,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걸.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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