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4도의 출근길. 바람이 얼굴을 베는 듯이 날카로웠다. 하지만 내 안에서 불어오는 감정은 그보다 더 싸늘했다. 바깥 날씨보다 더한 냉기를 심장에서 느낄 줄이야. 어쩌면, 난 이미 한기를 품은 사람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우연히 그녀의 통화를 듣게 됐다. 내 아내의 목소리는 낮았고, 나지막한 웃음이 섞여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말투. 내가 모르는 감정이 섞여 있는 대화였다. 상대는 상간남이었다. 이름조차 부르기 싫은 그 존재와의 대화였다.
“이번 주에 너무 추운데 어떻게 하지?”
“그럼 실내에서 만나자. 우리 데이트해야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추위에도 만나겠단다. 실내에서. 데이트. 그 말은 나에게 칼처럼 꽂혔다.
‘짐승도 추우면 움직이지 않는데, 너희는 한파 속에서도 만나겠다고?’
그녀는 내 앞에선 늘 차가운 얼굴이었다. 감정이 빠져나간 지 오래된 눈동자로 아이에게 미소 지었고, 내게는 습관처럼 “잘 다녀왔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 낯선 남자에게는 얼마나 따뜻한 말을 하고 있을까.
그런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애 옷 좀 사야겠어. 돈 좀 줘.”
나는 차마 웃지 못했다. ‘이 돈으로 그와 모텔을 가겠다는 건가?’ 그렇게 의심하는 나 자신이 초라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너지는 건, 그녀의 얼굴에 그 어떤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며칠 동안 나는 자책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부족했던 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내게 말 한마디 없이 등을 돌렸다. 이건 실수도 아니고, 방황도 아니다.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감정에 휩쓸렸다. 화가 치밀었고, 가슴이 타들어 갔다. 그녀에게 따져 묻고 싶었고, 상간남을 찾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이 감정에 내가 잡아먹히면, 난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조용해졌다. 감정을 내려놓고, 관찰자로 남기로 했다. 그녀가 잠든 뒤 핸드폰을 살폈고, 통신 내역을 조회했다. 위치 추적, 녹음, 사진. 이제는 증거가 말할 시간이다.
‘그래. 네가 진심으로 내 삶을 배신했는지, 나는 끝까지 확인할 거야.’
그녀는 여전히 연기처럼 살아간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챙기고, 주말이면 마트에 간다. 아이 앞에선 좋은 엄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의 눈빛은 내게서 떠났고,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갔다.
나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별일 없었어.”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분노와 비웃음이 뒤섞였다. ‘그래. 곧 네 입으로 말하게 될 거야.’
그날 밤, 또다시 그녀의 통화가 들렸다.
“그래, 이번 주에 만나자. 밖은 춥잖아. 실내에서 보자.”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연기에 속지 않는다.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내 아내였다는 사실이 이제는 낯설다. 내 곁에 있었던 시간보다, 그에게 마음을 준 순간들이 더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내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중이다. 상처받은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 아이에게 비겁한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다.
이제, 그녀가 선택한 삶에 대해 책임질 차례다. 나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냉정하게 걸어갈 것이다. 사랑이 끝났다면, 그 끝도 내 방식으로 마무리하겠다. 이제는 내가 결정을 내릴 시간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짐했다.
“이번에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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