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었고,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상간남과 주고받은 메시지, 시간대가 명확히 찍힌 위치 기록, 그리고 CCTV.
이건 상상도 아니고 오해도 아니었다.
그녀는 외도를 했다.
내 아내가, 내 아이들의 엄마가.
그 모든 증거 앞에서 무너진 건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
“설마”라는 말로 버티려 했지만, 이미 내 안에선 감정이 터져버렸다.
분노와 모멸감, 충격과 허탈함, 자책과 혼란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처가에 말했다.
"장인어른,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 혼자선 감당이 안 됩니다."
내심 ‘그래도 내 편은 되어주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내가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일깨워주는 데 그쳤다.
“이성끼리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너무 정색하지 마라. 지나가는 실수다.”
“니가 아빠 노릇, 남편 노릇 제대로 했는지부터 돌아봐.”
순간, 나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한 짓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내가 이 가정을 위해 희생한 시간과 노력들을
단 몇 마디로 무너뜨리는 사람들.
상식이 무너지고, 정의가 실종된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그쪽 집안은 다 이래요?”
“아내가 바람을 피웠는데, 거기다 왜 남편 탓을 해요?”
말을 뱉고 나니,
처가 식구들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나는 거기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이해받을 거라는 기대 자체가,
내 착각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내 앞에서 울었다.
“내가 미쳤었어.
그 사람은 그냥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였을 뿐이야.
정신 차리고 보니, 당신밖에 없더라.”
그래서?
그 몇 마디로 모든 게 지워질 줄 알았나?
그녀가 상간남과 나눈 대화엔
내가 평생 듣지 못했던 말들이 담겨 있었다.
“당신 덕분에 살 것 같아요.”
“당신이 있어 다행이에요.”
“내 삶에서 제일 후회되는 건, 너무 일찍 결혼한 거예요.”
그 말들 하나하나가
칼처럼 가슴에 박혔다.
나는 그저,
이 집을 지키고 싶었던 남자였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아이들 학비 걱정에 대출금 갚으면서도
가족이 웃으면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나를 ‘감옥’이라고 느꼈던 거다.
상간남의 존재가 명확해졌고,
나는 증거를 하나하나 모았다.
내가 당한 상처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더 이상 속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그동안 나를 속였고,
나는 나 자신까지 속이며 버티고 있었다.
가끔 상간남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떤 표정으로 그녀를 안았을까.
그녀는 어떤 표정으로 그에게 미소를 지었을까.
그 장면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찢는다.
“다 내가 잘못한 거야.”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아무 잘못 없어. 나만 나쁜 거야.”
그래,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진실을 인정한다고
모든 게 돌아오는 건 아니다.
나는 이제 법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내가 내 감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더는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이건 단지 한 남자의 복수가 아니라,
내 아이들의 아버지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애들은 엄마가 있어야지.”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진심으로 그 아이를 지키려는 어른이다.
나는 지킬 거다.
내 아이들,
그리고 무너졌던 나 자신까지.
이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녀가 외도한 순간,
모든 감정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지금 내가 하는 건
장례다.
그녀가 파괴한 사랑의,
내가 끝내 묻는 마지막 인연의.
이제, 시작이다.
그녀 없는 삶.
거기엔 죄책감도, 연민도 없다.
오직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과,
스스로에 대한 약속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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