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법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혼자 벤치에 앉았다.
하늘은 너무도 평온했지만, 내 안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소송 서류에 박힌 그녀의 이름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게 현실이 아니라 꿈처럼 느껴졌다.
아내가, 내가 사랑했던 그 여자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품에 안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녀가 집을 나가고, 상간남과 함께 있는 걸 확인한 그 순간부터, 나는 내 감정을 어쩔 수 없이 봉인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건 내 탓일까?”
처음엔 수백 번을 되뇌었다.
내가 더 따뜻했더라면, 더 자주 챙겨줬더라면, 더 대화를 나눴더라면.
하지만 그런 질문들이 내 마음을 더 갉아먹는다는 걸 깨달은 건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사람은 변할 수 있지만, 그렇게 이기적으로 등을 돌려도 되는 건지…
그녀의 선택을, 나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와의 첫 상담에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혼소송, 저는 기각하고 싶습니다.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아요.
이 관계를 제가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 말은 사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보다도
‘내가 아직 포기하지 못했다’는 고백에 가까웠다.
“그녀가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 돌아오긴 할까…”
나는 매일 그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친다.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건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그녀가 나간 뒤,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밤에 자다 깨서 엄마를 찾는 아이를 안고, 조용히 등을 두드리며 다짐했다.
“절대, 쉽게 끝내지 않겠다.”
시간이 지나자, 처음의 분노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력감과 외로움이 남았다.
그녀가 없다는 현실보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들이, 나를 더 무너뜨렸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이제 난 그 ‘좋은 사람’ 말고, 다른 걸 원해.”
그게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이면 왜 버려졌을까.
착한 가장이면 왜 외면당했을까.
이혼소송은 차갑게 진행되고 있다.
법원은 중립적이고, 서류는 감정이 없고,
세상은 너무 빨리 흘러간다.
그 와중에도 나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정말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이혼을 막는다고 해서,
그녀가 예전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지 않은가.
상간남과의 관계가 끝나고,
그녀가 모든 걸 후회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는
그 실낱같은 가능성.
그 희망 하나로 오늘도 서류를 붙들고 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그녀가 어느 날 돌아와 현관문 앞에 서서 말하는 거다.
“미안해. 모든 게 내 착각이었어.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 순간, 나는 과연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용서라는 건 누구를 위한 걸까.
그녀를 위한 건 아닐 거다.
그건, 나 자신을 위한 마지막 관문일지도 모른다.
운동을 시작했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마트를 가고, 혼자 영화를 본다.
처음엔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혼자인 삶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정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니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내가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그 작은 손을 잡고 걷다 보면
지금 내 감정이 비참해도,
이 아이는 나를 믿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울지 않는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
만약 다시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이겠지만,
기적에만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도 법률 문서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너를 잊는 데는 오래 걸리겠지만,
너를 기다리는 시간은 멈췄어.”
더 이상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
아이를 위해, 나 자신을 위해
내가 걸어야 할 길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를 지키기로 했다.
그녀의 선택은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나의 선택은 나의 미래가 된다.
이제는 내가 나를 선택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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