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

한해동안 2025. 4. 4. 16:42

이혼소송 서류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이 이상하리만치 떨렸다.

어쩌면 감정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서류는 그녀가 직접 제출한 것이었다.

외도와 가출, 거기에 더해 이혼 요구까지.

나는 그 서류를 보는 순간, 이제 정말 끝이구나 싶었다.

이건 단순한 실수도 아니고, 일시적인 감정도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 이 관계의 다리를 끊어버렸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의 입에서 ‘사랑이 식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그녀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긴 걸 알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이혼을 먼저 요구했다는 건,

이제 나와의 관계를 ‘정리’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를 찾아갔다.

유책배우자는 쉽게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말에,

한 줄기 희망이라도 생긴 듯 가슴이 뻐근했다.

“기각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말이 내게 준 건 승리감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 이 관계를 잡을 수 있다는 착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은, 법이 아무리 막아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기각되면, 정말 그녀는 돌아올까?”

나는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가끔은 밤마다 상상했다.

그녀가 다시 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고,

아이를 안고 울며 사과하는 장면을.

하지만 아침이 되면, 그건 그저 꿈일 뿐이었다.

현실의 그녀는 여전히 상간남과 함께였고,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법적으로 싸우기로 했다.

이혼을 막아보자고, 그래도 가정을 지켜보자고.

변호사에게 서류를 넘기고, 증거를 정리했다.

상간남과의 메시지, 사진, 카드 내역까지.

한 줄 한 줄 볼 때마다 속이 뒤틀렸지만,

나는 버텼다.

“그래, 이건 나 자신을 위한 싸움이야.”

며칠 뒤, 법원에서 이혼 기각 판결이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뭔가를 이긴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법적으로 이혼이 안 된 것뿐,

그녀의 마음은 이미 나를 떠나 있었다.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걸까…”

내가 이토록 몸부림쳤던 건,

그녀를 잡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버려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함이었을까.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애초에 방향 없는 걷기와도 같았다.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이젠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 보았다.

양육권 확보, 재산 분할, 위자료 청구.

모든 걸 법적으로 준비했다.

내가 다칠 만큼 다쳤고,

이제는 다친 만큼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원한 이혼이라면,

그 대가도 치르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는 아무 죄도 없다.

엄마가 집을 나갔어도,

나는 이 아이의 삶을 온전히 지켜야 했다.

변호사에게 물었다.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법원은 나에게 양육권을 주었다.

그 판결문을 들고 나오며,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게 남은 유일한 승리였고,

그 순간, 나는 모든 감정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연락하지 않았다.

이혼이 정리되고, 법적 분쟁이 끝난 뒤에도

그녀는 그저 조용히 사라졌다.

상간남과 이어졌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갔는지는

이제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아침에 아이와 손잡고 등원하고,

밤엔 동화책을 읽어주며 잠이 든다.

가끔은 외롭지만,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이제 나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삶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늦지 않았다.

오늘도 아이의 웃음소리에 잠이 깬다.

그게 내 삶의 이유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나 걷고 있다.

이제 나는 나만의 길을 걷는다.

혼자서도,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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