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조용했다.
그런데, 그 조용함을 뚫고
마치 벽을 타고 스며드는 듯한 울음소리가 있었다.
아내는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고 있었다.
“제발… 한 번만… 제발 봐줘…”
그 울음이 처음엔 참 애처롭게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울음소리는 마치 반복된 알람처럼
귀를 찌푸리게 만드는 소음이 되어갔다.
나는 말이 없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그저 바라봤다.
그녀는 다시 애원했다.
“그 남자랑 다시는 연락 안 할게요. 진심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비웃음이 터졌다.
‘그 상간남이랑 이미 붙어먹고도 남을 사람이 이제 와서…’
그 말은 이제 너무 늦어버린 약속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를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아내는 내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 손이 닿은 순간
혐오감이 스쳤다.
“울어도, 말해도… 이젠 안 믿어.”
그녀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단 말보다, 난 지금 조용한 집이 필요해.”
나는 방으로 들어갔고,
문을 닫았다.
문 너머로 울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다.
분노조차, 슬픔조차.
그저, 끝났다는 감각만 남아 있었다.
---
혼자 있는 방,
나는 노트북을 켰다.
법률 상담 사이트를 열고
가까운 변호사 사무실의 번호를 눌렀다.
“이혼 상담을 예약하고 싶습니다.”
그녀와의 관계는 이미 회복이 불가능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이 결혼 안에서는 더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녀가 상간남에게 보냈던 메시지들이 먼저 떠올랐다.
“당신이 있어서 견딜 수 있어.”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에요.”
그리고 그 모든 말 뒤에
아이와 나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
며칠 뒤, 아내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우는 얼굴로 말했다.
“정말 미안해… 죽을 만큼 후회해…”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왜 미안한데?”
그녀는 멈칫했다.
그리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걸 말해야 돼?”
“그래. 말해봐. 네가 뭘 잘못했는지, 정말 알고 있는지.”
그녀는 울면서 입을 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이 사람은 아직도 자기 잘못이 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다시 살아갈 이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
나는 아이를 안았다.
아이의 체온이 내 가슴을 데워주는 유일한 온기였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품에서 잠들었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가 커서 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는 끝까지 지키려 했단다.
하지만… 혼자서는 지킬 수 없는 것도 있어.”
나는 더는 무너지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더는,
내 안에 있던 사랑과 존중이라는 단어를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놓은 사람과
같은 집 안에 숨 쉬지 않으려 한다.
---
내가 아내를 떠나려는 이유는
복수가 아니다.
벌을 주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나를 지키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다.
그녀의 울음과 거짓 약속을 더 이상 견디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 결심한 것이다.
오늘 밤, 나는 이 모든 감정을
조용히 이 일기에 묻는다.
내일은 변호사 사무실로 향할 것이다.
그게 이 결혼의 마지막 예의가 될 테니까.
이제 나는,
나를 위한 고요한 삶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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