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당신이 원했던 이혼, 이제는 내가 원합니다.

한해동안 2025. 4. 9. 02:39

두 달 전이었다.

아내가 먼저 꺼냈다.

"나, 더는 못 살겠어."

"이혼하자."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숨을 들이마신 것도, 내뱉은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녀가 진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는 여유조차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본능처럼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리,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될까?"

눈물까지 흘렸다.

그랬다.

나는 그때, 아직 그녀를 믿고 싶었다.

아니, 믿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말은 단호했다.

미련도, 흔들림도 없어 보였다.

"우린 이미 끝났어. 나, 다른 사람 좋아하게 됐어."

그 말을 들은 순간에도,

나는 그 ‘다른 사람’이 진짜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감정적인 말, 순간적인 분노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걸.

블랙박스, 위치기록, 톡방 캡처.

증거는 차고 넘쳤다.

내가 모를 줄 알았던 건가.

아니면, 그냥 들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걸까.

그 어느 쪽이든, 나는 철저히 배신당한 거였다.

그 후, 한동안 나는 폐인이었다.

출근해도 일에 집중이 안 됐고,

집에 와서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지겨워졌을까.

점점 그녀는 조심스러워졌다.

예전처럼 나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이혼 얘기도 꺼내지 않았고,

오히려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왜였을까.

그녀가 떠나려는 그 남자에게,

거절당했기 때문이라는 걸 곧 알게 됐다.

그 상간남은 그녀를 책임질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꿈꿨던 새 삶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온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땐 내가 미쳤었어."

"다시 잘해보고 싶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안도한 듯한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마음이 식었다는 걸.

이제는 내가 이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는 걸.

한때는 그녀가 떠날까 봐 두려웠다.

밤마다 뒤척이며 생각했다.

‘정말 이혼하면 어떡하지.’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녀의 말투, 행동, 숨소리마저 불쾌해졌다.

말을 섞기도 싫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그녀는 예전의 아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이제는 내가 이혼을 말할 차례다.’

조용히 변호사와 상담을 시작했고,

경제권도 정리했다.

생활비는 더 이상 현금으로 주지 않았다.

아이와의 시간은 내가 더 많이 가져갔고,

집안의 흐름을 하나씩 내 쪽으로 바꿔갔다.

그녀는 느꼈을 것이다.

내가 바뀌고 있다는 걸.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요즘 왜 이렇게 차가워졌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 미소 하나면 충분했다.

그녀는 불안해졌다.

그 불안은 곧 초조함이 되고,

초조함은 결국 두려움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녀를 향해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가 주도권을 가졌던 지난 시간은 끝났다.

마침내,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억나? 두 달 전, 네가 이혼하자고 했던 거."

"그래. 이제 나도 그 말에 동의해."

그녀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참을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이제는 내가 이 관계의 끝을 말한다.

이제는 내가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잘했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당당하게 버틴 나에게."

그리고

다시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를 위해,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지난 시간들을 지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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