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이제, 당신의 마음이 회복될 차례입니다

한해동안 2025. 4. 10. 02:44

요즘 내 얼굴을 보면 사람들이 묻는다.

"괜찮아?"

그 질문 하나에 웃음이 나왔다.

대체 어떤 표정을 하고 살고 있었길래,

모두가 나를 걱정하는 얼굴로 보는 걸까.

거울을 봤다.

눈이 퀭하고, 볼이 쑥 들어갔다.

어깨는 자꾸 움츠러들고,

말수는 줄어들고,

나는 매일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 시작은,

아내였다.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 떠 있던 이름 하나.

상간남.

그 이름을 몰랐을 때는

그래도 덜 아팠다.

하지만 이름을 알고 나니,

그가 어디 사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녀와 얼마나 자주 연락했는지를 알게 되니,

상처는 깊이를 달리했다.

그녀는 울었다.

"진짜 미안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 사람은 그냥… 위로였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막혔다.

나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족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내 모든 역할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왜 몰랐을까.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그녀가 평소와 다르게 외출이 잦아지고,

휴대폰을 몸에 붙이고 다니던 그 모든 순간들을

왜 나는 다 그냥 넘겼을까.

아니, 어쩌면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다만 믿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녀가,

내 아내가,

그럴 리 없다고.

이젠 안다.

사랑은,

배신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아꼈는지,

가정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모든 시간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녀가 돌아오려 한다는 것이다.

상간남에게 버림받고,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이제야 "가정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땐 정신이 없었어."

"다시는 안 그럴게."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마음이 하나 있었다.

사랑이 끝났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란 적 있다.

그녀가 다시 나를 보고 웃어주기를 기다린 적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이,

그녀의 그 한 마디에,

쓸려 내려갔다.

나는 변했다.

경제권을 정리했다.

내 통장으로 생활비를 돌렸고,

모든 지출 내역을 따로 정리했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왜 그래? 우리 같이 살기로 했잖아."

나는 차분히 말했다.

"너랑 나, 지금 같은 공간에 살 뿐이야.

다시 ‘같이’ 산다는 말은 하지 마."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무서운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애써왔는지

그녀는 모른다.

상처받아도 참았고,

의심이 생겨도 덮었고,

내가 울고 있을 때도 아이 앞에서는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보기로 했다.

더 이상 그녀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용서도, 이해도, 강요당하지 않기로 했다.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치스러웠다.

왜 내가 치료를 받아야 하지?

잘못한 건 나 아닌데.

하지만 이내 알게 됐다.

이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부서졌고,

그걸 꿰매야 하는 건 결국 나라는 걸.

아내는 여전히 집에 있다.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나에게도 형식적으로 말을 건넨다.

하지만 우리는 부부가 아니다.

나는 지금, 관찰 중이다.

그녀가 진심으로 반성하는지,

다시 흔들릴 가능성은 없는지,

나는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끝나는 날,

나는 이 관계의 결말도 정할 것이다.

하루하루, 조금씩 나는 회복되고 있다.

식욕도 돌아오고,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밤에 잠도 더 잘 잔다.

거울 속 내 얼굴도

예전보다 생기가 돈다.

나는 안다.

이 상처는 오래 갈 것이다.

완전히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에

나는 다시 삶을 쌓아갈 것이다.

그녀가 나를 부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다시 세운 것이다.

이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

"넌 정말 잘 버텼다."

"다시는 그렇게 상처 주는 사람 곁에 너를 두지 마."

"네 삶은 너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수 있다면,

그땐 정말,

온전히 나로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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