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외도, 그깟 실수?

한해동안 2025. 4. 8. 01:38

나는 여전히 그녀와 같은 집에 살고 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쉰다.

하지만 그녀를 마주볼 때마다, 숨이 잠시 멎는 기분이 든다.

그 얼굴, 그 눈빛,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은 마음.

처음 의심이 들었던 건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평소처럼 휴대폰을 테이블에 두고 가던 아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늘 손에 쥐고 다녔다.

샤워할 때도, 잠시 옆방에 가서 설거지를 할 때도.

그녀의 손목처럼 폰이 따라다녔다.

그리고 나는, 아주 우연하게

그녀의 문자 알림을 보게 되었다.

‘오늘도 기다릴게. 어제처럼 향기롭던 네가 보고 싶어.’

그 문장 하나가 내 온몸을 얼려버렸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참았다.

차마 그 장면을 놓을 수 없어서, 핸드폰을 뒤로 넘겼다.

사진, 메시지, 통화기록.

모든 게 그녀와 상간남이 나눈 일상이었다.

“그게… 처음이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아내는 울었다.

하지만 나는 그 눈물 속에서 죄책감보다

들킨 사람의 두려움을 먼저 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그날 밤, 차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숨죽여 우는 것도 처음이었다.

다음 날, 나는 변호사를 찾아갔다.

감정을 뱉어내는 대신,

이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부터 배워야 했다.

“증거는 충분하신가요?”

변호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증거가 있다는 게, 오히려 내 아픔을 더 증명해버리는 것 같았다.

아이를 생각했다.

아직도 엄마 품에 안겨 자는 아이.

그 웃는 얼굴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당장은 이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태도를 바꿨다.

더 이상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불쑥 외출을 했고, 연락을 피했고,

무엇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당황했다.

“왜 이렇게 변했어?”

“내가 정말 싫어졌어?”

그녀는 애쓰는 척했다.

밥을 먼저 차려놓고, 내 옷을 개고,

일찍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모든 행동에 진심이 없다는 걸.

단지 죄책감을 덜기 위한 ‘연기’였다는 걸.

“너는 날 사랑했니?”

내가 조용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못 하는 사람은, 이미 답을 말한 거였다.

그녀가 상간남을 완전히 끊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녀의 말만 있을 뿐이었다.

“정리했어.”

“다신 연락 안 해.”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했던 말 중,

몇 가지는 확실히 거짓이었고

나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거짓이었다.

나는 하루하루 정리했다.

아이를 챙기고, 운동을 시작하고,

작게나마 저축을 늘렸다.

혼자 살아갈 준비를 했다.

그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나를 위한 보호막이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불안해했다.

예전엔 내가 그녀에게 집착했고,

그게 그녀를 더 쉽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내가 거리두기를 하니

그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 진짜 끝나면 안 되잖아.”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손을 뿌리치지도 않았고, 잡아주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녀와 함께 살고 있지만,

더 이상 그녀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나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이혼을 할지, 유지할지.

하지만 단 하나는 확실하다.

이제 이 관계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그녀가 마음대로 흔들 수 있는 남편이 아니라,

그녀가 무너뜨릴 수 없는 남편으로 나는 다시 일어섰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시험하고,

가끔은 잘해보려고 하고,

가끔은 다시 흔들어보려 한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배웠고,

신뢰 없인 아무것도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뼛속 깊이 알게 됐다.

지금 나는 ‘사랑받는 남편’이 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 삶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이 싸움에서

내가 이기려는 이유는

그녀를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는

그 싸움에서

매일 조금씩

승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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