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지독한 싸움의 끝에서

한해동안 2025. 3. 26. 18:12

새벽 3시.

잠에서 깼다. 아니, 사실은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새벽만 되면 심장이 먼저 깨어난다.

오늘도 그랬다.

몸을 뒤척이다가,

불 꺼진 거실로 나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아내의 휴대폰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내가 손에 쥔 것도 아니고, 알림을 억지로 켠 것도 아니다.

그저…

알람창에 떠 있던 그 한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 “자기야, 주말엔 못 보는 거야?”

그 순간,

나는 모든 걸 알아차렸다.

---

그녀는 내 아내였다.

함께 산 지 7년.

서로의 아픔을 안다고 믿었던 시간들이었다.

아이도 있고,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었다.

그런데,

그 ‘가족’이 누군가의 메시지 하나에 무너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의 외도,

그리고 그 상대인 한 남자.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눴다.

자기야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주말 약속을 나누며,

나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 남자와 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

아내가 욕실에 들어간 틈에

나는 폰을 더 들여다봤다.

사진.

통화 내역.

숙박 어플 기록.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나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모습들이

그 남자와 나눈 대화 속에 있었다.

“네가 너무 좋아. 당신 없으면 못 살아.”

“오늘도 꿈에서 당신 나왔어.”

> 그 남자는 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

나는 바로 묻지 않았다.

지금 당장 들이대면,

그녀는 오리발을 내밀 것이고,

상간남 역시 모든 흔적을 지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고,

기록했고,

캡처했고,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

며칠 후,

나는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 “그 남자한테 전화해.”

그녀는 놀랐다.

> “무슨 소리야?”

> “그 남자한테, 끝내겠다고 말해. 내 앞에서.”

그녀는 말없이 눈을 피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없이 스피커폰을 켰다.

> “지금 제 아내랑 연락하지 마십시오.

이미 모든 증거 확보했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하시면,

법적으로 대응할 겁니다.”

그 남자는 잠시 침묵했고,

이내 말을 흐렸다.

>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유부녀인지.”

거짓말.

아내의 SNS엔 내 사진이 있고,

가족 여행 사진도 넘쳐난다.

그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했다.

---

그날 밤.

아내는 무릎을 꿇었다.

> “정말 미안해. 내가 미쳤었어.”

“당신한테 외로움을 느꼈고…

그 사람이 따뜻하게 대해줘서…”

나는 웃음이 났다.

아무 감정 없는, 그런 웃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게 ‘외로웠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

나는 조용히 말했다.

> “다시는 그 남자와 연락하지 마.

아니면, 그 순간 바로 이혼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건 단지 종결이 아니라,

이제부터 내가 주도권을 쥔 시작일 뿐이라는 걸.

---

며칠 뒤,

그 남자는 자필로 사과문을 보냈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

내용증명도 준비 중이라던 변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 서류를 받았고,

서랍 안에 넣었다.

---

이제, 그녀는 조심스러워졌다.

폰을 항상 테이블에 두고,

퇴근 후 먼저 연락하고,

나에게 자꾸 말을 붙이려 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녀를 바라볼 수 없다.

의심은 사라졌지만,

신뢰는 돌아오지 않았다.

---

나는 변했다.

아내가 내게 돌아오려 할수록,

나는 더 차분해졌다.

그녀는 내 감정에 눈치를 보며 물었다.

> “당신 요즘,

나한테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 자신을 위해 살기로 했다.

헬스장에 등록했고,

오랜 친구들과 연락을 시작했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됐다.

---

그리고 그제야,

아내는 불안해졌다.

> “혹시…

너도 누굴 만나고 있는 거야?”

아니.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를 다시 만나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나를 잃은 것이다.

내가 떠난 게 아니라,

그녀가 나를 떠나게 만든 것이다.

---

나는 오늘도 참고 있다.

참는다는 건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판단을 미루는 것이다.

나는 무너진 가정을 무작정 붙들지 않는다.

다만,

언제든 손을 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금,

끝이 어디인지,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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