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장모의 두 얼굴

한해동안 2025. 3. 26. 18:12

오늘도 혼자 깨어 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얼굴을 때린다.

시린 게 아니라 따끔하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아내의 외도를, 그리고 장모님의 말을.

---

그날, 우연히 듣게 된 통화였다.

나는 아내가 방 안에서 누구와 통화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장모님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뒤흔들어버렸다.

> “엄마, 나 이제 정리하려고…”

> “왜? 멋진 남자던데. 탐나지 않냐?”

> “…뭐?”

> “나는 솔직히 네가 그 남자 만나는 게 자랑스러워.”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장모님이… 내 아내의 외도를 부추기고 있다고?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숨이 목에 걸렸다.

그대로 방 문을 열었다.

> “지금 뭐라고 했어…?”

아내가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에서 모든 게 확인됐다.

숨기고 있던 감정,

덜컥 들켜버린 죄책감,

그리고… 어쩌면 한때 사랑했던 나에 대한 무관심.

---

그날 이후,

나는 아내와 마주 앉아

모든 걸 물었다.

그녀는 처음엔 부인했다.

“그냥 친구야.”

“그 사람은 위로가 되어줬을 뿐이야.”

하지만 대화 내용, 사진, 문자, 호텔 영수증까지

내 손에 쥐어진 증거들을 보여주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

몇 시간 뒤,

나는 장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외도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믿기지 않았던 건

장모님이 그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 “어머니, 저예요.”

> “어머, 우리 사위. 무슨 일이니?”

그녀는 평소처럼 다정했다.

그 말투가 그날따라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 “저 다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바람피운 거.

그리고 어머니가 그걸 부추겼다는 것도요.”

순간,

전화기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진 장모님의 말.

> “네가 못하니까 그런 거 아니니?”

> “…….”

> “우리 딸이 얼마나 멋진 줄 알아?

그 남자도 괜찮던데.

난 사실… 너랑 결혼한 것보다

지금 만나는 그 남자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나는 숨을 삼켰다.

분노가 아니라,

이 사람들과 같은 가족이라 착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 “그런 말씀 하셨죠.

‘사위는 아들 같다’고.”

> “그 마음은 진심이었지.

하지만 너 너무 무른 애잖아.

여자 하나 만족시키지도 못하면서.”

그 순간,

내 심장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박살나는 소리가 났다.

---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아내와 장모님 사이에 나라는 사람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음을 인정했다.

---

그날 밤, 아내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 “엄마랑 통화했어?”

> “어.

다 들었어.

네 외도가 자랑스럽대.”

아내는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소리치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 “그래서 물을게.

넌 엄마 말 듣고,

계속 그 남자 만날 거야?

아니면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이 가정을 선택할 거야?”

잠시의 침묵.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상간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난 가족을 지킬 거야.”

그 말이 나를 위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내 눈앞에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은

내가 움직일 기준점이 되어줬다.

---

나는 이제 감정을 쏟지 않는다.

장모님이 뭐라 해도,

남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도

이젠 듣지 않는다.

며칠 후,

장모님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 “너, 우리 집에 와서 뭐 하려는 거야?

동네 망신이라도 주려고?”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 “그럴 필요 없어요.

이미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다 알고 있으니까요.”

> “네가 감히—”

뚝.

나는 전화를 끊었다.

---

그 이후로,

나는 내 삶을 되찾기 시작했다.

위치 공유를 요구했다.

외출 시 무조건 보고하게 했다.

상담 치료를 함께 받자고 했다.

아내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받아들였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이 가정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헬스장 등록.

나만의 공간 정리.

잊고 지낸 취미 다시 시작.

예전엔 아내 눈치 보느라 못하던 것들이다.

이제는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중심에 있다.

---

며칠 뒤,

장모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문 앞에서 말했다.

> “어머니,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

> “뭐?”

> “제 아내는 어머님의 딸이지만,

이제 저에게는 다시 ‘아내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 가정에 개입하지 마세요.”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돌아섰고,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

나는 오늘도 아내와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직도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내가 나를 먼저 지킨다는 사실이

나를 덜 무너지게 만든다.

---

이제 나는 안다.

사랑만으로는 가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신뢰가 무너졌을 땐,

나 자신부터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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