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잠에서 깼다. 아니, 사실은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새벽만 되면 심장이 먼저 깨어난다.
오늘도 그랬다.
몸을 뒤척이다가,
불 꺼진 거실로 나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아내의 휴대폰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내가 손에 쥔 것도 아니고, 알림을 억지로 켠 것도 아니다.
그저…
알람창에 떠 있던 그 한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 “자기야, 주말엔 못 보는 거야?”
그 순간,
나는 모든 걸 알아차렸다.
---
그녀는 내 아내였다.
함께 산 지 7년.
서로의 아픔을 안다고 믿었던 시간들이었다.
아이도 있고,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었다.
그런데,
그 ‘가족’이 누군가의 메시지 하나에 무너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의 외도,
그리고 그 상대인 한 남자.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눴다.
자기야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주말 약속을 나누며,
나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 남자와 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
아내가 욕실에 들어간 틈에
나는 폰을 더 들여다봤다.
사진.
통화 내역.
숙박 어플 기록.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나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모습들이
그 남자와 나눈 대화 속에 있었다.
“네가 너무 좋아. 당신 없으면 못 살아.”
“오늘도 꿈에서 당신 나왔어.”
> 그 남자는 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
나는 바로 묻지 않았다.
지금 당장 들이대면,
그녀는 오리발을 내밀 것이고,
상간남 역시 모든 흔적을 지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고,
기록했고,
캡처했고,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
며칠 후,
나는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 “그 남자한테 전화해.”
그녀는 놀랐다.
> “무슨 소리야?”
> “그 남자한테, 끝내겠다고 말해. 내 앞에서.”
그녀는 말없이 눈을 피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없이 스피커폰을 켰다.
> “지금 제 아내랑 연락하지 마십시오.
이미 모든 증거 확보했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하시면,
법적으로 대응할 겁니다.”
그 남자는 잠시 침묵했고,
이내 말을 흐렸다.
>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유부녀인지.”
거짓말.
아내의 SNS엔 내 사진이 있고,
가족 여행 사진도 넘쳐난다.
그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했다.
---
그날 밤.
아내는 무릎을 꿇었다.
> “정말 미안해. 내가 미쳤었어.”
“당신한테 외로움을 느꼈고…
그 사람이 따뜻하게 대해줘서…”
나는 웃음이 났다.
아무 감정 없는, 그런 웃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게 ‘외로웠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
나는 조용히 말했다.
> “다시는 그 남자와 연락하지 마.
아니면, 그 순간 바로 이혼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건 단지 종결이 아니라,
이제부터 내가 주도권을 쥔 시작일 뿐이라는 걸.
---
며칠 뒤,
그 남자는 자필로 사과문을 보냈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
내용증명도 준비 중이라던 변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 서류를 받았고,
서랍 안에 넣었다.
---
이제, 그녀는 조심스러워졌다.
폰을 항상 테이블에 두고,
퇴근 후 먼저 연락하고,
나에게 자꾸 말을 붙이려 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녀를 바라볼 수 없다.
의심은 사라졌지만,
신뢰는 돌아오지 않았다.
---
나는 변했다.
아내가 내게 돌아오려 할수록,
나는 더 차분해졌다.
그녀는 내 감정에 눈치를 보며 물었다.
> “당신 요즘,
나한테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 자신을 위해 살기로 했다.
헬스장에 등록했고,
오랜 친구들과 연락을 시작했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됐다.
---
그리고 그제야,
아내는 불안해졌다.
> “혹시…
너도 누굴 만나고 있는 거야?”
아니.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를 다시 만나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나를 잃은 것이다.
내가 떠난 게 아니라,
그녀가 나를 떠나게 만든 것이다.
---
나는 오늘도 참고 있다.
참는다는 건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판단을 미루는 것이다.
나는 무너진 가정을 무작정 붙들지 않는다.
다만,
언제든 손을 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금,
끝이 어디인지,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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