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상간남과의 소송도 마무리됐고,
법적인 책임도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고,
나는 참았다.
이 정도면 정리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불안은 계속 남았다.
문득 그녀가 휴대폰을 만지는 손끝을 보면,
어디론가 시선을 두는 그 짧은 찰나를 보면,
나는 다시 안쪽에서 무너졌다.
혹시 아직 연락하는 건 아닐까?
그냥 겉으로만 정리한 척하고, 뒤로는…
그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물고 늘어졌다.
아무것도 안 보이게 만들고,
평범한 하루조차 버겁게 만들었다.
한밤중, 문득 깨어나면 휴대폰부터 들여다봤다.
그녀의 행동, 그녀의 눈빛,
그녀의 흔적에서 뭔가 단서라도 찾고 싶었다.
전화번호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상간남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
내 마음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그걸 추적하는 순간,
나는 나를 잃게 된다.
그녀가 다시 무슨 짓을 하는지 알게 되더라도,
그게 지금의 나를 구원해줄 수는 없다.
내 마음은, 내 선택으로만 회복될 수 있는 거다.
내가 상간남의 번호를 알아내면 뭐가 달라질까.
그에게 욕을 퍼붓고,
그녀에게 다시 책임을 묻고,
그렇게 고통을 되갚으면 내가 편해질까.
아니,
잠깐은 후련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오래갈 리 없다는 걸 나는 이미 안다.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
나는 다시 ‘그들’ 중심의 삶을 살게 될 테니까.
그들이 뭘 하든, 어디에 있든
나와는 이제 아무 상관이 없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숨 쉴 수 있었다.
“진짜 끝난 걸까?”
“아직도 둘이 뭔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 때마다
나는 문득 내 아이 얼굴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지금도 내게 “아빠”라고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언제까지나 의심과 분노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을 순 없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네가 어떻게 사느냐야.
그들이 뭘 하든 그건 이제 네 인생이 아니야.”
그 말이 처음엔 너무 차갑게 들렸다.
하지만 자꾸 곱씹다 보니,
그 말이야말로 나를 살리는 말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이제 상간남의 이름을 떠올리며 이를 갈지 않는다.
그녀의 눈빛을 분석하며 하루를 보내지도 않는다.
그 모든 감정의 흐름을
이젠 내 안에서 흘려보내고 있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오랜만에 러닝화를 신었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었다.
그 끝에,
이상하게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감정,
누군가의 말 한마디,
문득 울컥한 순간들까지.
그렇게 쓰다 보니,
조금씩 감정이 가라앉았다.
한 줄씩,
나를 정리해갔다.
나는 더 이상 복수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
확인하려 들지 않고,
증거를 찾으려 집착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선택했다.
이 삶에서 주도권은
다시 내 손으로 되돌아왔다고.
내가 외도를 용서했다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 일로 인해
내가 평생을 지옥에 살 순 없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다.
내가 무너질 이유는,
그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지 못했을 때만 생기는 거니까.
나는 지킬 거다.
나 자신을,
내 아이를,
내 앞으로의 시간을.
그녀가 다시 무슨 선택을 하든,
그 상간남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그건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나는 이제,
오직 나의 몫만 끌어안기로 했다.
이건 단호한 결심이고,
슬픔 끝에 건져낸
작지만 단단한 나의 생존 방식이다.
내 인생은 이제
그들의 이야기로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문장을 다시 써내려가고 있다.
비로소,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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